잠잠했던 아워홈의 오너간 경영권 분쟁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현재 아워홈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막내 구지은 부회장이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네 남매간 지분율이 엇비슷해 쉽게 한쪽이 승기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 경영권 분쟁은 9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막내 구지은 부회장이지만,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건 장녀인 구미현 씨입니다.
구미현 씨는 9년여 간 이어진 분쟁에서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지은 부회장 사이를 오가며 분쟁의 판도를 흔들어왔습니다. 업계에서는 구미현 씨가 배당 확대와 회사 매각 등 금전적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어 당분간 아워홈의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9년 끌어온 남매 다툼
아워홈은 고(故) 구자학 회장이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의 식품서비스 부문을 들고 독립하면서 설립된 종합식품기업입니다. 구 회장은 슬하에는 구본성 전 부회장, 구미현씨, 구명진 전 캘리스코 대표, 구지은 부회장 등 네 남매를 뒀습니다.
구 회장은 2000년 창립 당시 자신이 70세라는 고령이었음을 고려해 네 남매에게 일찌감치 지분을 분배했습니다. 2023년 말 기준 1대 주주인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율은 38.6%입니다. 그 뒤를 이어 구미현 씨는 19.3%, 구명진 전 대표는 19.6%, 구지은 부회장은 2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워홈의 경영에 먼저 참여한 것은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입니다. 구 부회장은 2004년 아워홈에 입사한 후 2015년 2월 부사장에 오르면서 적극적으로 아워홈 경영 일선에 참여했습니다. 다른 남매들이 아워홈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 회장이 이미 막내딸을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구 회장이 구지은 부회장을 각별히 아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랬던 아워홈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5년입니다. 구 부회장이 내부 경영진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임원들을 좌천시키거나 업무에서 배제했다는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이 탓에 구지은 부회장은 부사장에 오른지 5개월만에 부사장직을 내려놨습니다. 이 때 등판한 것이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입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LG, 삼성 등에서 일한 후 개인 사업을 하다가 50대 후반에 접어든 2016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아워홈에 합류했습니다. 이 때 구지은 부회장은 캘리스코 대표로 밀려났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아워홈 복귀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언니 구명진 전 대표가 구지은 부회장 편에 섰던 것과는 달리, 큰 언니 구미현 씨는 계속 오빠인 구본성 전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때문에 구지은 부회장의 아워홈 경영 복귀는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구본성 전 부회장의 '보복운전' 논란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구본성 전 부회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구미현 씨는 2021년 마음을 바꿔 막냇동생의 손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당시 세 자매는 이사 선임과 배당 제안 등에서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자는 내용의 협약서를 체결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세 자매는 그해 아워홈 정기주주총회에서 오빠인 구본성 전 부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는 데 성공했고, 구지은 부회장은 5년만에 사내이사로 복귀, 처음으로 대표이사 자리에도 오르게 됩니다.
돈 따라 갈팡질팡
하지만 구미현 씨의 구지은 부회장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작은 2022년 아워홈이 2021년 실적에 대한 결산배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면서 부터입니다. 아워홈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다시 흑자 전환에 성공하긴 했지만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구지은 부회장은 배당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는 당시 구지은 부회장의 '무배당' 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이때 구본성 전 부회장이 다시 등장합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구미현 씨에게 함께 회사 지분을 매각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구미현 씨는 오빠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반격의 기회를 잡은 구본성 전 부회장은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새로운 이사들을 선임하기 위해 회사 측에 임시주총 개최를 요구했습니다. 회사 지분 매각을 위해서는 이사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들로 이사회를 교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구본성 전 부회장을 막아섰습니다. 법원은 세 자매가 2021년 체결한 협약서가 아직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탓에 구미현 씨는 오빠의 편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 구지은 부회장은 아워홈 실적 정상화에 집중했습니다. 2022년에는 매출액 1조8354억원, 영업이익 537억원을 낸 데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1조9835억원, 영업이익 943억원을 내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습니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주당 131.46원을, 올해는 262.93원의 배당을 지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총 배당액은 지난해 30억원에서 올해 60억원으로 두 배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 배당이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이 아워홈 대표를 지내던 시기의 배당에는 못미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본성 전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후 아워홈의 배당금 총액은 2017년 68억원, 2018년 74억원, 2019년 171억원, 2020년 456억원으로 계속 상승했습니다.
심지어 2020년에는 적자를 내고도 이듬해 지급한 결산배당은 774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지급한 2년치 배당을 합쳐도 100억원이 안 되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죠. 그래서인지 지난해 구본성 전 부회장은 3000억원의 배당금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아워홈 매각 수순?
결국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가 다시 결성한 '남매 연합'은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두 동생을 이사회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구지은 부회장과 구명진 전 대표 등 이사 재선임 안건들이 이 모두 부결된 반면, 구미현 씨와 그의 남편인 이영렬 전 한양대 의대 교수를 사내이사로 하는 주주제안은 통과됐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의 장남 구재모 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주주제안 안건의 경우 회사 측이 안건으로 상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구지은 부회장과 구명진 전 대표 등 이사들의 임기는 오는 6월 만료됩니다. 따라서 이 때부터 아워홈 이사회에는 구미현 씨와 이영렬 전 교수 부부만 남게 됩니다. 이사회에는 최소 3명의 이사를 둬야 합니다. 이에 따라 아워홈은 조만간 다시 주총을 열어 새로운 이사를 선임할 계획입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의 지분을 합치면 57.8%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만큼 자신들의 측근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전망입니다.
업계에서는 아워홈이 향후 자연스럽게 매각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가 이미 2022년 지분 매각을 추진하다 실패한 전적이 있는데다, 최근 배당 규모에 대해 불만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사회를 측근으로 채운 후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지분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제 구지은 부회장이 스스로 아워홈의 경영권을 되찾는 일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구지은 부회장은 일찍이 회사 경영에 참여해 성장시켜온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구지은 부회장 입장에선 경영권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는 구지은 부회장과 구명진 전 대표의 합계 지분율은 40.3%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최소 10% 이상의 지분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이때문에 구 부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구미현 씨의 지분을 사들여 의결권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구지은 부회장이 단독으로 자신의 현금을 들여 큰 언니의 지분을 사들이기는 어렵습니다. 2022년 구본성 전 부회장이 지분 매각을 추진하던 당시 매각주간사가 매각 티저레터에 적어낸 아워홈 기업가치는 1조원이 훌쩍 넘습니다. 현재 아워홈의 실적이 더 개선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가치는 더 커졌을 겁니다. 아워홈 기업가치를 1조원이라고만 해도 구미현 씨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2000억원에 달합니다.
다만 이 기업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아워홈과 비슷한 규모인 CJ프레시웨이, 현대그린푸드 등의 시가총액은 5000억원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시가총액을 기업가치와 단순하게 동일시하긴 어렵지만 참고 삼을 순 있겠죠. 어찌됐든 구지은 부회장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거액의 실탄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구지은 부회장이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너 일가가 수 년째 이리저리 회사를 흔들어 놓으면서 회사의 리스크만 커졌다는 점입니다. 임직원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커졌을지는 말할 것도 없겠죠. 구자학 회장이 남매들에게 비슷한 지분을 안겨준 이유가 계속 다투길 바라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루 빨리 아워홈이 정상화 되기를 구 회장도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점입가경이 된 아워홈의 남매전쟁, 더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