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띵.
`대표님 죄송합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내일 실무자 미팅 참석이 어렵겠습니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날아 온 문자를 확인 한 장 대표는 잠시 멈칫했다. 일을 목숨처럼 여기는 이 부장이 미팅 불참이라니. 깍듯한 예의로 소문 난 사람이 일방적인 문자 통보? 게다가 이 시간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생겼구나. 장 대표는 `무슨 일?` 하고 답 문자를 쓰려다 이내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네`하는 짧은 답만 보냈다. 때로 정말 힘들 때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고의 배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음 날 저녁, 다시 이 부장에게 문자가 왔다.
`제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일 저녁에 서울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로 힘든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대표님께만 말씀 드립니다…`
세상에. 그랬구나. 장 대표는 가슴이 먹먹했다. 짬짬이 하나 뿐인 동생 자랑을 하던 이 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도 주변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사람. 속이 깊은 만큼 아픔도 깊을 터인데. 무슨 말로도 위로하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장 대표는 한 동안 아픈 사연의 문자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주세요.’`장 대표는 새삼 말의 한계를 깨닫는다. 가까이 있으면 안아주기라도 할 텐데.
나흘 만에 출근 한 이 부장이 장대표에게 인사를 왔다. 핼쑥해진 볼이 안쓰러웠다.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마음 고생이 심하겠어요. 어머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몸 져 누우셨습니…"
장 대표는 눈이 벌게 지며 말끝을 맺지 못하는 이부장의 손을 감싸주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아주 낮고 작은 이 부장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퇴근 무렵 장 대표는 서로를 돌아가며 얼싸 안아주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free hug`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하얀 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어린 아이부터 아주머니까지 안아드리며 격려의 말을 나누고 있었다. 프리허그아토피학교의 가두 갬페인이었다. 문득 장 대표는 초등학교 내내 아토피에 시달렸던 둘째가 떠올랐다. 간지럽고 따갑다며 종일 칭얼거리던 둘째를 어찌할 수 없어 꼭 안아 주면 잠시 후 품 안에서 쌕쌕 거리며 잠들곤 했었는데… 장 대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맑은 웃음이 가득한 청년 자원봉사자와 허그를 나눈 뒤 후원 약속을 남겼다.
누군가를 안아 주는 행위, 허그야 말로 우리가 사람임을 확인하는 원초적인 자기보호 행동이 아닐까? 그저 다른 이와 체온과 숨결을 나누는 그 짧은 순간,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그래서 외로움을 떨쳐 버릴 수도 있고, 기운이 나기도 하는 경험.
장 대표는 이 부장이 생각났다. 아무 말 말고 그저 안아 줄 것을….
장 대표는 다음 주 월례 회의 때부터 동료를 서로 안아주며 고맙다고 말하는 허그 체험을 꼭 넣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