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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와 칭찬, 그 한끝 차

  • 2013.12.14(토) 08:30

월요일 아침, 오늘도 나본부장은 빨간 색 타이를 고른다.
“주가 상승을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 주시는데 우리회사 주가가 떨어지면 되겠습니까? 옷차림을 통한 일종의 기도랄까?.. 허허.”
지난 가을, 대표이사는 사내 방송 인터뷰에서 월요일마다 붉은 넥타이를 매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었다. 그 날 이후 빨간 타이는 나본부장을 비롯한 대부분 임원들에게 월요일 유니폼이 되었다.
“임원회의를 레드서클이라 불러야 겠어. 그렇게들 빨간 색이 좋아?”
월요미팅을 마치면서 대표이사가 슬쩍 던지는 말에 고이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한다.
“대표님의 그 깊은 뜻을 어찌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대표님과 저희는 일심동체 입니다.”
대표이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나본부장은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 고이사를 바라본다. 일이면 일, 운동이면 운동, 인물이면 인물, 뭐하나 빠지지 않으면서 립서비스까지 빈틈 없다. 업무성과 탄탄하고, 어디가도 밀리지 않을 학력에, 부하들에게 인기까지 좋은 인물이 대체 뭐가 아쉬워서.. 굳이 상사에게 부지런히 손 비비지 않아도 되겠으련만… 하긴, 고속 승진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나본부장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힌다.

셋째 주 토요일. 3봉타기의 날이다. 심신의 건강이 재운을 부른다는 대표의 뜻에 따라 과장급 이상이 참석해 등반을 한다. 취지는 좋은데 문제가 있다. 산봉우리 세 개를 넘어야 끝난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첫 봉우리를 넘고 다시 시작하면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마련, 둘째 봉우리를 넘고 나면 모두 말이 없어진다. 삼봉타기를 마치고 나면 누가 당장 업어줬으면 싶을 만큼 몸이 무겁다. 아무리 세상일이 삼세판이라지만 대체 뭔 일인가 싶다. 미팅이다, 접대다 피곤한 한 주를 보낸 나본부장 역시 오늘만큼은 3봉이 거뜬한 대표의 황금체력이 얄밉다.
“대표님, 덕분에 초겨울 산행 해봅니다. 공기가 아주 맑은데요?”
고이사는 준비운동에 앞서 입 운동부터 한다.
“너무 속도내지 마십시오. 대표님 체력 따라 갈 사람 드뭅니다.”
“등산화 새로 마련하셨습니까? 좋아 보이는데요?”
고이사를 시작으로 레드서클 멤버가 돌아가며 대표에게 한 마디씩 한다. 어제만 해도 3봉타기 불평에 침이 마르던 그들이 하루 사이에 등산애호가로 변했다.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두 번째 봉우리를 오를 무렵, 분명히 대표와 선두 쪽에 있었던 고이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어~, 생각보다 체력이 좋은데? 두 번째만 넘으면 세 번째는 그냥 갈 수 있어. 내가 그 나이 때보다 잘 타는데?” 땀 범벅이 돼 헉헉거리는 김과장의 배낭을 잠시 고이사가 받아 준다.
“잠깐만, 사과 한쪽 줄까? 지난 달 보다는 훨씬 났지? 체력장 한다 생각해. 어차피 해야 할 거, 기분 좋게 해야 덜 힘들어.”  숨을 몰아 쉬는 과장들을 격려하느라 한참인 고이사의 이마에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돌이켜보니 고이사는 부하에게도 곧잘 립서비스를 했다. 칭찬도 잘 해주고  격려도 자주 했다. 함께 일한 십 여 년 동안 고이사가 사내에서 싫은 얘기로 얼굴 붉히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본부장은 문득 고이사야말로 진정한 아부의 달인임을 깨닫는다.

아부, 언덕 아阿에 기댈 부 附를 쓰는 아부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언덕에 기대다’이다. 우리말의 ‘비빌 언덕’에 가깝다. 그저 강자에게 붙어 알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조직이라는 내가 기댈 언덕을 만드는 것이 아부의 본뜻이 아닐까? 위로 아래로 칭찬하고 격려해주기에 여념 없는 고이사를 바라보며 나본부장은 아부와 칭찬, 그 한끝 차이가 바로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진정성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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