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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돌이의 아날로그 경영

  • 2014.03.02(일) 07:06

“어때? 요즘도 조기축구 해?”
“잘 지냈지? 미영이 공부도 잘 하고?”
“오랜만이야. 집사람도 여전하시고?”

한 달이 약간 넘었으니 그리 오랜만도 아니다. 더 들어간다. 공장을 뺑뺑 뛰어다니며 직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 드리며 살아 온 세월이 30년을 훌쩍 넘었다. 김회장은 직원들이 자기를 부르는 ‘뺑돌이’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 한다.

반백의 머리를 휘날리며 공장을 찾은 김회장은 어김없이 공장을 돌아보며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한 달에 두 번씩 공장으로 내려왔는데 지난 달에는 해외박람회 출장이 길어진 탓에 한 번을 건너 뛰었다. 그래서일까, 악수하는 김회장의 손에 힘이….
“오본부장이 안 보이는데… 어디 갔어?”
“독감이 걸렸답니다. 삼일 째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그래? 영감 힘들겠네. 괜찮은지 전화 좀 넣어봐.”
김회장의 고향친구인 오본부장은 이미 정년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오본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계약직이지만 공장에서의 입지는 변함없다. 회장과 2세인 기획부장에게 언제고 궂은 소리, 싫은 소리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회장이 공장에 오면 겸상 파트너는 항상 오본부장이다.

“거봐. 술 좀 그만하고 쉬어가며 하라니까….아직도 뭐 그리 할게 많다고… 그래, 그래, 알았어. 푹 쉬다 나와. 책상 안 뺄 테니..”
머리가 희끗하게 변해도 친구는 친구인가 보다. 늘 전쟁터로 향하는 장수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슬쩍 다정해지는 걸 보니.
김부장은 여전히 건강하고 혈색이 좋아 큰 형처럼 보이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멀쩡히 운영하는 자기 회사를 두고 다른 회사에 입사하라셨던 아버지가 칠 년 전에 뜬금없이 회사로 들어 오라고 하셨던 날부터 김부장은 하루도 변치 않았다. 아버지는 쉽게 놓을 수 있으실까 싶었던 경영 전반을 전문경영인인 대표에게 맡기고는 철저히 그로부터 실무를 배우게 하셨다. 관심을 갖는 눈치도 한번 보이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딱 한가지 함께 하자셨다. 바로 정기 공장 행이었다.

김회장은 뺑돌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세 시간 동안 공장을 두 바퀴나 돌았다. 공장 직원들과 적어도 한 두 마디씩은 나누었고 거리가 먼 이들과는 눈빛과 미소로 대화를 했다.
처음 몇 달 간 김부장은 아버지 김회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반가워하실까? 정말 저리 좋으실까? 어떻게 이 직원들의 사정을 다 알고 계실까? 정말 아시는 걸까 아니면 아는 척 하시는 걸까? 몇 시간 동안 앉지도 않으시고… 다리는 안 아프신가?’
모든 비밀이 생기고 또 풀리는 곳이 화장실이라 했던가.
“ 뺑돌이 몇 년 생이야? 참 정정해.”
“만만치 않으실 걸. 오본부장이랑 갑장(동갑)이라 잖아.”
“기운이 펄펄 이야. 십 년은 더 날아다니겠더라.”
“다행이잖아. 요즘 같은 세상에. 오너가 빌빌하면 회사도 빌빌댈 텐데.”

김부장은 직원들이 볼 일을 보고 나가기 전까지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었다. 하나는 분명했다. 아버지 뺑돌이는 명장이었다. 공장을 뺑뺑 돌며 직원들과 함께 에너지를 만드셨고 그 속에서 신뢰가 안정을 얻어내셨다.
딩동. 기획실 이대리가 보낸 메시지다. SNS로 누구보다 사내에서 폭 넓은 소통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던 김부장이 멋쩍게 웃는다. 이대리가 결혼을 했는지, 애가 있는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김부장은 아직 모른다.

김부장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졸고 있는 아버지 김회장의 손을 바라본다. 직원들과 일일이 정을 나눈 그 투박하고 주름진 손이 커다랗게 눈에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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