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특별기획 좋은기업

②스텔스 규제에 멍드는 금융

  • 2015.05.19(화) 10:19

비즈니스워치 창간 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확 풀자!] 금융부문②
보이지 않는 규제·보이지 않는 손이 갉아 먹는다

A은행이 금융당국으로부터 검사를 받고 나서다. 검사역이 마케팅 사안에 시정을 요구하면서 확인서나 공문 없이 구두로만 지도했다. A은행은 그 이후로 최근까지 2년 동안 그 검사역이 요구한 대로 해당 사안을 보수적으로 운영했다. 최근 은행에서 업무 담당자가 바뀌었고, 검토 과정에서 똑같은 사안을 A은행만이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검사 당시에도 담당자는 다른 은행들도 비슷하게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그 의견은 무시됐다. 2년이 지나 이 담당자는 금융당국에 질의했고,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얻었다.

이런 당국의 불합리한 규제 사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비일비재하다는 방증이다. 별것 아닌 듯해 보이는 한 사례이지만 당국의 불합리한 규제 관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구두지도도 그렇고, 똑같은 사안을 검사역에 따라, 은행에 따라 달리 판단한 점도 그렇다. 이 은행은 이로 인해 기회비용 등의 유·무형의 손실도 입었다.

 


◇ 보이지 않는 규제가 너무 많다

스텔스, 주로 항공기나 함정에 적용하는 기능으로 상대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은폐 기능을 말한다. 규제에 적용하면 구두지도 등 보이지 않는 규제 정도로 해석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금융권의 모범규준, 가이드라인, 공문, 구두지도 등 비공식 행정지도를 정비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당시 행정지도 680건 가운데 30건(4%)만 공식적으로 운영키로 하고 나머지는 폐지하거나 자율운용으로 바꿨다. 바꿔 말하면 단 4%만 필요성이 인정됐고 나머지는 불필요하거나 지나친 규제였다는 얘기다.

이달 초엔 이런 일도 있었다. 임 위원장이 참석한 금융회사 해외진출 현장간담회에서다. 이날 참석한 외환은행 관계자는 동일한 국외 점포 내 3년 이상 근무 제한 규제로 해외 전문인력 양성에 어려움이 있으니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건의했다.

이 자리에서 임 위원장은 해외점포에 대해선 장기근속을 하도록 이미 지난 2013년 11월에 지도했다고 답했다. 해당 국제업무 담당자는 모르는 일이었다. 금융위는 당국의 홍보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외환은행 관계자는 잘 알지 못하고 질문한 것에 대해 은행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국의 생각처럼 홍보 부족일 수도 있고, 또 규제를 완화해도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를 조심스러워 하는 금융회사의 관성(?)일 수도 있다.

 

성대규 전 금융위 국장의 '그림자 금융규제'에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성 전 국장은 이 책에서 "금융사 영업·지배구조 등에 대한 각종 모범규준이 50개가 넘고 구두·행정 공문에 의한 행정지도는 셀 수 없을 정도며, 그것도 해마다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실무자라지만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하게 만든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현장점검반에서 규제건의를 받고 있는데 이중 상당부분이 이미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있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도 말했다.

◇ 규제의존적인 민·관 어떡할거니?

각종 규제에 따른 업무 비효율이나 신규업무 진출의 어려움은 이미 수도 없이 지적돼 왔다. 이로 인해 금융이 한 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올 만큼 나왔다.

이런 규제가 만들어 놓은 규제의존적인 금융회사와 당국의 모습은 더욱 뼈아픈 현실이다. 빗대어 말하면 '자기주도 학습'이 어려워진 것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 셈이다. 최근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런 이유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세부적인 사안을 모범규준이나 가이드라인 형식 등으로 지침을 내렸고, 금융회사는 이를 따랐다. 또 새로운 영역이나 신규 업무를 취급할 때 금융당국에 일일이 물어봐야 하고, 금융당국은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애매한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체질이 양쪽 다 굳어진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그동안 금융회사는 하라는 것만 하면 되고, 당국은 지침대로 못하면 혼내면 되기 때문에 양 쪽 다 편했지만 이런 구조에선 금융이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네거티브 방식으로 금융회사들이 하겠다는 것은 웬만하면 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조금씩 체질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보이지 않는 손도 있다

 



보이지 않는 규제는 또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인사 개입이다.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은 금융권의 고질적인 병폐다. 특히 금융권에 굵직굵직한 인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난해 KB금융이 지배구조 리스크로 몸살을 앓았던 것 역시 낙하산 인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서로 다른 낙하산 줄을 타고 내려왔다. 결국 누구 낙하산 줄이 더 센지를 겨루다 둘 다 망하고, KB금융도 망가진 꼴이 됐다.

잘못된 인사개입이 불러온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제는 관치금융도 모자라 정치금융까지 등장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관피아로 불리는 관료 출신의 금융계 진출이 차단되자 그 틈을 정치권 인사나 정치권에 줄을 댄 인사들로 채워졌다. 금융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도 은행 감사로 임명됐다. 알고 보니 선거 캠프 출신이거나 정당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수개월째 은행 감사와 지주 사장을 선임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치권 뒷배를 이용해 이 자리로 밀고 들어오려 했던 것을 간신히(?) 막았던 것도 여러 차례다.

금융당국 출신 한 관계자는 "윤 회장이 점찍어 놓은 인사를 은행 감사에 앉히려 하는데 여전히 눈치를 보는 듯 하고, 지주 사장 자리는 내년 총선 이후 상황을 봐서 선임 여부를 결정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렇듯 언제부터인가 은행 인사에서도 정치 이슈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어느 분야보다 전문적이고 투명해야 할 금융권에 비전문가들이 자리를 꿰차고, 정치권에 휘둘리는 모습은 후진금융의 전형적인 형태라는 지적이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커녕 언제 또 KB사태와 같은 권력다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