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다시 미래를 설계한다> ①-2
정철상 나사렛대 취업전담 교수 인터뷰
스펙보단 실무...."중소기업도 기회”
IMF 외환위기가 터진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한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륙도', '사오정'은 이미 옛말이다. 전체 실업자 100만명 가운데 20대 비중이 40%가 넘을 정도로 청년실업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비즈니스워치는 2018년 연중기획의 일환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그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기자, 영업사원, 마케터, 헤드헌터, 대학 교수. 정철상 나사렛대학교 취업 전담 교수가 이제까지 몸 담은 직업은 천차만별이다. 직업을 서른 번이나 바꾸는 동안 번듯한 대기업에 발 붙이지 못했고 연관성 적은 직무를 닥치는 대로 했다.
"저도 탄탄대로를 걷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스펙, 마음에 들지 않는 업무 등 곡절이 많았다는 게 그가 털어놓은 속사정이다. 정 교수는 실무에 부딪치고 바뀐 직업에 빠르게 적응하며 생존방법을 터득했다.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대학에서 학생의 취업을 돕고 있다. 구직자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정철상의 커리어노트' 블로그 운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카페에서 만난 정 교수는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갈 것을 권하지 않았다. 실무를 통해 적성을 파악하고 중소기업에서 기회를 찾으라는 게 거칠게 살아남은 그의 조언이다.
▲ 정철상 나사렛대학교 취업 전담 교수는 "대기업에 가지 않고도 행복을 찾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올해 고용시장 전망은 어떻습니까?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5~10년은 어렵습니다. 성장률 자체도 떨어진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면 일자리가 생겼지만 신(新) 산업구조에선 성장해도 고용으로 직결되지 않습니다.
10년 정도만 지나면 인구 감소로 취업 여건이 개선될 겁니다. 하지만 당장은 인구구조상 넘쳐나는 구직자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청년이 사회적으로 핸디캡을 지닌 셈이지요.
-구직자의 스펙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꼭 스펙이 좋아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나요?
▲구직자의 돈과 시간이 엉뚱한데 투입되면서 사회적 손실도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기업은 수익을 올릴 수만 있다면 없던 자리도 만듭니다. 돈을 벌어주겠다는 사람을 싫어할 기업은 없습니다.
문제는 구직자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다는 건데요. 지금은 학생이 쌓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봐야 허드렛일 수준인 아르바이트 말고는 없습니다. 이런 식의 사회경험은 기업에서 원하는 조건과 괴리가 있습니다.
-구직자가 실무경험을 어떻게 쌓아야 할까요?
▲한양대학교와 아주대학교는 실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에 출근하면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해주며 12~15학점을 줍니다. 업무성과에 따른 평가도 진행하고요. 이렇게 직무 적합도를 따지고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확산돼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냉정하지만 돈입니다. 아마추어는 즐기지만 프로는 돈을 받는 대가로 욕도 듣습니다.
지도하는 학생 중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버는 친구가 있습니다. 전공이 아닌데도 유튜브로 코딩을 배워 2000만원을 모았다고 하는데요. 대기업 신입사원의 인사기록을 보면 의외로 직접 돈을 버는 경험을 쌓은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한 해 50만명씩 졸업자를 쏟아내지만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약 5만명에 불과합니다. 좁은 통로에 사람이 몰려 있으니 사회가 피로해집니다. 가계에선 취업 준비기간 동안 숙식, 학비를 대느라 부담이 커집니다. 구직자의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학이 대기업만 선호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본력을 갖추고 이미지도 좋은 대기업하고만 협력하려고 하지요. 대학이 중견, 중소기업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 학생들도 자연히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구직자는 불확실한 비전과 낮은 처우를 이유로 중소기업을 꺼리고 있는데요.
▲흔히 중소기업에 대해 많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느라 전문성을 쌓을 수 없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하지만 깊이가 먼저일지, 속도가 먼저일지는 장기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도 책을 쓰거나 연구하며 소득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 구직자는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는 사례를 소수의 특수한 케이스로 치부합니다. 다른 길(중소기업)도 괜찮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대기업에 가지 않고도 행복을 찾는 사례와 방법론을 공유하는 기회도 많아져야 합니다.
-어렵게 취업하고도 금방 퇴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저성장을 받아들이는 시기에 중요한 것은 직원의 정서 만족도를 높여주는 겁니다. 적은 보수로 작은 일을 하지만 회사생활이 즐거우니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기업문화 개선이 GDP 증가 이상의 고용 안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은 신입사원도 구조조정에서 예외가 아닌데요. 불안정한 고용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요?
▲구직자가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 잘 나갔던 산업도 7~8년 후엔 꺾일 수 있습니다. 조선, 해운업의 부진 등 장기적 추세를 잘 살펴야겠지요. 하지만 단기적으로 대응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산업 트렌드가 워낙 짧아졌으니 단기에 집중적으로 적응방안을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대학교육은 정해진 학과에서 정해진 과제를 주니 산업 변화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민간이나 준공공 교육기관에선 트렌드를 더 빠르게 흡수합니다. 3개월 교육과정 동안 프로젝트를 주면서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식이지요. 개인 스스로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나서야 하며 국가의 지원도 더해져야 합니다.
-왜 서른 번이나 직업을 바꾸신 건지 궁금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직장을 갔더라면 이직하지 않았겠죠. 재능도 스펙도 부족해 억지로 가기 싫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사정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한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구직자에게 저처럼 생각지 못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시대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불안정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철상 나사렛대학교 취업 전담 교수는 스무살 때 봉제직공이 되었다가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군 제대 후 300여곳에 입사지원을 했으나 모조리 탈락했다고 한다.
겨우 입사한 첫 직장에서 2년만에 해고 당했고, 이후 무역·엔지니어링·영업 등 다양한 업종을 경험한 뒤 취업코치의 길을 걸었다. 현재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청춘의 진로 나침반><따뜻한 독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