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0주년기획 [DX인사이트]
지용구 더존비즈온 솔루션부문 대표 인터뷰
"DX 4.0 시대, 더존 익스피리언스 완성하겠다"
"아들이 아주 어릴 때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졌어요. '페일(fail)'이란 메시지 창을 보더니 자연스럽게 확인을 누르더라구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너 페일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아들이 그러더군요. '어, 다시 하라는 거야.' 충격적이었죠. 흔히 성공의 반대가 실패인 줄 아는데 아이의 눈에선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DX, 한번에 완성? 계속 업데이트 하는 것"
국내 대표적 디지털전환(DX) 전문기업 더존비즈온의 솔루션사업부문 지용구(54) 대표를 최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만나, DX 성공비법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DX의 진짜 실패는 다시 하지 않는 것,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RP(전사적자원관리)·아마란스10·위하고 등 핵심솔루션을 보유한 더존비즈온은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인 지난 2021년 사상 최대인 3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중 3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곳은 더존비즈온이 처음이다. 비대면 업무가 일상이 되면서 오랜 기간 DX를 추진한 저력이 빛을 발했다.
지 대표는 QR코드를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20대 후반 스타트업인 선우정보시스템을 창업해 관련 특허를 다수 출원한 경영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업을 접어야하는 값비싼 경험을 했다. 선우정보시스템에서의 창업실패는 그후 입사한 더존비즈온에서의 재도전으로 이어졌다.
실패라는 메시지 창이 뜨자 지 대표는 확인을 눌렀고, 더존비즈온이 추진하는 각종 DX 사업에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 대표는 더존비즈온의 성장동력인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통합 플랫폼 '아마란스10' 개발도 주도했다.
그는 "DX는 완료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끝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DX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더존비즈온이 고객사에 한 번 서비스를 공급하고 사업을 완료하는 게 아니라, 이를 계속 유지·보수·업데이트하는 이유다.
더존비즈온이 2021년 선보인 '아마란스10'도 끝없는 물음과 도전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수 많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융합해 하나의 그릇에 담기까지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개발자 248명을 포함해 약 430명이 매달렸다.
지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의 오피스 프로그램은 문서생산만을 위한 도구지만 우리는 문서생산과 유통, 커뮤니케이션 등이 합쳐진 협업도구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래서 직접 만들어 써보고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출시 3년차를 맞은 아마란스10은 첫해 매출이 19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102억원까지 늘었다. 올해도 기능 고도화와 외부 서비스 제휴를 거듭하며 이미 매출 100억원을 훌쩍 넘겼다. 기능을 계속해서 고도화하는 플랫폼인 까닭에 향후 추가적인 매출 인식도 기대된다.
지 대표는 "고객사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받길 원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사고자 하는 것"이라며 "DX를 통해 기업 운영의 큰 비용 중 하나인 시간을 아껴주고, 이런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DX,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나
지 대표는 DX의 단계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하며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했다.
'DX 1.0'은 2009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변화에 직면한 시기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데스크톱, 노트북 중심으로 일하는 시대에서 모바일로 일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그는 "DX 1.0은 모바일만으로 일해도 불편함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며 "이동성, 기동성 측면에서 일하는 방식이 개선됐고 당시 핵심 기술력은 모바일 앱을 통해 구현됐다"고 설명했다.
'DX 2.0'은 클라우드 서비스의 확장기다. 사람들은 하나의 서비스 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어했다. 개인의 스마트폰과 조직의 클라우드, 유용한 속도를 제공하는 5세대 이동통신(5G) 등 외부 인프라 개선도 이같은 변화에 영향을 줬다. 지 대표는 "기존에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쓰는 시대였다면, 클라우드 시대는 접속해 쓰는 시대로 전환한 것"이라며 "더존은 이런 시대에 대응해 데이터센터를 선제적으로 만들고 각종 전산자원을 고객사에 제공해왔다"고 말했다.
'DX 3.0' 단계는 융합과 연결, 공유라는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데이터 중심의 서비스가 강조되는 시기다. 매뉴얼을 숙지하고 지식이 있어야 할 수 있던 업무를 축적된 데이터가 대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챗GPT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DX 3.0 단계에선 국내 기업들도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따라가려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지 대표는 "ERP(전사적자원관리), KMS(지식관리시스템), 그룹웨어, 오피스 문서 관리 등을 하나의 서비스에서 제공하면 여러 시스템을 일일이 배울 필요가 없다"며 "융합과 연결, 공유가 더욱 쉬워지고 단계와 절차가 줄어들어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는데, 이런 시장을 우리가 리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다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해 국내 기업들이 풀어야할 숙제는 있다. 빅테크에 맞서 경쟁할 것인지 협력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성큼 다가온 AI 시대…DX도 사람역량이 핵심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초거대 인공지능(AI)의 등장은 'DX 4.0'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지 대표는 "DX 4.0 단계에선 초거대 AI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며 "AI를 움직이는 원료는 데이터가 될 것이고, AI의 힘은 질문하는 힘에서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챗GPT의 등장으로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해당 서비스를 배우고 쓰는 방식에서 벗어나,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어를 입력해 지식을 얻듯이 '질문하면서' 각종 IT 서비스를 사용하는 시대가 더욱 폭넓게 열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AI라는 기술 자체보다 인간이 AI를 상대로 질문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눈길을 끈다. 좋은 질문을 입력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질문하는 힘은 리더십과 인문학, 경험, 노하우에서 나온다"며 "챗GPT는 과정일 뿐 결과는 인간의 몫"이라고 말했다.
기업 의사결정 핵심인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도 조언을 꺼냈다. 챗GPT가 등장한 DX 시대에서 남다른 역량을 요구받는 위치라서다. 지 대표는 "CEO라는 포지션은 CXO(최고경험자)로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며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시대의 'C레벨'은 총체적 경험자여야 한다. 기술의 깊이와 응용의 넓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X가 새롭게 나온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지적에도 지 대표는 공감했다. 그는 "DX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이게 하는 마케팅 용어"라면서도 "그러나 마케팅 용어였던 스마트폰이 실체가 안 보이는 미래를 보여주는 '메가 트렌드'가 됐던 것처럼 DX란 용어는 우리가 가야 할 미래, 목표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했다.
지 대표는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밝힌 뒤 "DX 4.0 시대에는 더존의 소프트웨어를 경험하는 것이 곧 디지털 전환이 될 수 있도록 '더존 익스피리언스(Douzone eXperience)'를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더존비즈온도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또는 초거대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데이터로 사업하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런 시대에선 더존비즈온도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고객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