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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내 유전자 정보, 내가 알면 안되나요?

  • 2020.11.05(목) 17:33

소비자 직접 유전자 검사 70개 항목…대부분 '흥미성'
암‧기저질환 등 유전적 변이 '주의' 위해 항목 확대 필요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유전적으로 발병 위험이 높은 질환을 미리 알고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면 건강하게 100살을 맞이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 있다. 바로 유전자 검사다. 이미 유전자 검사 기술발달은 눈부시다. 그러나 규제 문턱으로 소비자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테라젠바이오가 최근 질병관리청이 주관하는 ‘DTC(소비자 대상 직접) 유전자 검사 서비스 인증제 2차 시범사업’에서 전 검사 항목에 대한 승인을 획득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지난해부터 ‘DTC 유전자검사서비스 인증제’ 도입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DTC 유전자 검사’는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이나 매장 등을 통해 검사기관 및 기업에 직접 의뢰하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말한다.

앞서 테라젠바이오는 지난해 1차 시범사업에 선정돼 55종의 유전자 검사항목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번 2차 시범사업 승인으로 15종의 검사 항목을 추가하면서 국내 최다인 70종에 대한 DTC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검사 항목을 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건강에 핵심인 항목들은 여전히 규제에 막혀 검사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기존에 건강과 직결된 항목들은 ▲체질량지수 ▲중성지방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퇴행성 관절염증 감수성 ▲요산치 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알코올 대사‧의존성‧홍조 ▲색소침착 ▲여드름 발생 ▲모발 굵기 ▲피부 노화 ▲멀미 ▲카페인 대사‧의존성 ▲와인선호도 등 흥미성 항목들이다.[관련 기사: [워치체험단]술 먹으면 빨개지는 얼굴…'유전자'에 답있다]

이번 2차 시범사업에서는 비타민A‧B‧E‧K, 셀레늄, 루테인 등 각종 영양소 항목이 추가됐다. 개인 특성 영역 중에는 골질량, 복부 비만, 운동에 의한 체중 감량 효과, 체중 감량 후 회복(요요) 가능성 등이 추가됐다. 건강 부분은 골다공증과 관련된 골질량 항목 단 1개뿐이다. 이런 항목들 모두 건강에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암이나 치매, 기저질환 관련 유전자 검사가 대상에서 빠진 것은 아쉽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다. 다만 이런 검사는 여전히 의사 처방이 있어야 가능하다.

▲테라젠바이오의 DTC 검사 결과지.

일각에서는 DTC 검사를 두고 국민들에게 건강염려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각종 건강기능식품 과잉섭취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유전자와 염색체를 포괄하는 유전체 시대다. 전 세계 DTC 유전자검사 시장 규모는 2018년 1억4000만 달러(한화 약 1580억 원) 규모로, 2026년에는 6억1120만 달러(한화 약 6897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중 북미 시장은 전 세계에서 4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DTC 유전자검사 시장을 주도하면서 만성 질병 예방 및 유전 질환 위험의 효율적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2016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이 개정되면서 DTC 검사가 가능해졌다. 테라젠바이오가 아시아 최초로 개인 유전체 검사 서비스를 출시한 지난 2010년 이후 6년이나 지나서야 국내 DTC 검사의 숨구멍이 트였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국내 DTC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영양소 외에 와인선호도나 단맛, 쓴맛, 짠맛 민감도 같은 흥미성 분야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와인이 내 입맛에 더 맞는지 알고 싶어서 유전자 검사를 하려는 소비자는 찾기 힘들다.

현재 국내 유전자 검사 허용범위는 유전자 검사 시장의 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 테라젠바이오 외에도 마크로젠, 디엔에이링크,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등 많은 유전체 전문기업들이 국내 규제 문턱에 걸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4년 전부터 규제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DTC 유전자 검사 사업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극히 드물다”라며 “해가 지날수록 DTC 사업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은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의료정보를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DTC 검사를 통해 심각한 질환의 유전적 요소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수는 있다.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차세대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NGS)을 통해 최적의 치료방법을 찾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유독 소비자들이 직접 의뢰하는 DTC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제 장벽이 높다. DTC 유전자 검사가 확대되면 유전자 변이를 통해 발병 위험이 높은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을 예측할 수 있고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으며 관리할 수 있다. 이는 초기 진단으로 이어져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감소 및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DTC 검사 항목이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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