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 검색

대기업 단체급식 시장 '오픈'…실효성은 '글쎄'

  • 2021.04.13(화) 16:26

공정위, 삼성·LG 등 8개 대기업집단과 시장 개방
산업 경쟁력 육성…실질적 지원 없이는 무용지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8개 대기업이 단체급식 시장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상생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다르다. 대기업의 주문을 감당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사실상 없어서다. 산업 육성 책임을 기업에 전가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장을 여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1조 2000억 시장 中企에 '문호개방'

공정위는 최근 삼성·신세계·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백화점·CJ·LG·LS 등 8개 대기업집단과 단체급식 일감 개방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 계열 급식회사가 수의계약으로 그룹 내 계열사 단체급식을 맡아 왔다. 앞으로는 전면 경쟁 입찰이 도입된다. 이번 조치에 참여하는 대기업집단의 연간 단체급식 식수는 1억 7800만 식(食)규모다. 이 중 기숙사, 연구소 등에서 약 1000만 식 규모의 일감이 내년부터 개방된다.

대기업들의 구체적 계획도 제시됐다. LG는 4000만 식 규모 시장을 순차적으로 전면개방한다. CJ는 65%에 달하는 367만 식을 중소기업에 맡긴다. 현대백화점은 김포·송도 아울렛 직원식당을 지역 기업에 넘긴다. 신세계는 현재 42개 사업장의 급식을 중소기업에게 맡기고 있다. 향후에는 개방 폭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일감 개방 시 지방 중소기업을 우선 고려하고, 직원들이 인근 자영업자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이번 조치는 대기업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기반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결정됐다. 현재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4조 28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삼성웰스토리·아워홈·현대그린푸드·CJ프레시웨이·신세계푸드 등 상위 5개 기업이 이 중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시장에서 약 4500곳의 기업이 경쟁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1조 2000억 원 규모의 단체급식 일감이 중소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산업 경쟁력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 경쟁 입찰이 도입되면 급식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직원 복지가 향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참가자 수가 늘어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가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거래 관행이 뿌리내리는 구조적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참여 기업과 협력해 정기적으로 일감 개방 추진 상황을 공개하고, 순차적으로 개방 범위가 확대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中企에겐 여전히 높은 벽…'기업에 부담 전가' 지적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단체급식 일감 나누기로 중소기업이 혜택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력 집약적 사업 구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식 1000식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20명의 조리 인력이 필요하다. 물류·배식·위생·관리 인원은 별도다. 이런 상황에서 수천 명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아니면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일감 개방이 장기적으로 급식의 질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기업 단체급식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맞춤형 식사를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시작부터 '직원 복지'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계열사의 단체급식 사업 영업이익률은 1~2% 수준으로 낮다. 하지만 경쟁입찰이 도입될 경우 핵심 경쟁력은 가격이 된다. 결국 최저가 경쟁이 벌어져 질적 수준 악화를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체급식 발주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인적·물적 인프라이며, 이 부분의 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면서 "중소기업이 단체급식 수주를 시도할 때에는 인프라를 외주로 돌려야 해 비용 부담이 대기업보다 크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식사의 질을 낮추는 것 외의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의 실효성 문제도 거론된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중견·외국계 기업만이 이익을 볼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급식사업자 입찰에서 대기업을 제외한 바 있다. 당시에도 중소기업 육성이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동원, 풀무원, 아라코 등 중견·외국계 기업이 낙찰받았다. 대기업 단체급식 시장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급식 산업 육성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지난 2017년 정부세종청사 단체급식 사업 입찰가는 1인당 3500원 선이었다. 당시 일반 사업장의 절반 수준이며 최저임금 인상분도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다. 비용 부담이 컸기에 중소기업은 입찰 시도도 하기 어려웠다. 결국 풀무원과 동원이 사업을 맡았다. 정부 기관에도 중소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판국에 기업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부분은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에 대한 물질·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기관이 중소기업에 급식을 위탁하는 등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중소기업이 대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경험을 쌓도록 이끌어야 훗날 시장 참여도 활발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단체급식 시장을 열어 중소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실질적 지원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들이 대기업 단체급식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비즈니스워치 뉴스를 네이버 메인에서 만나요[비즈니스워치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

많이 본 뉴스 최근 2주 한달

산업·부동산 경제·증권 디지털·생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