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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③진로 소주, '마케팅 교과서'가 되다

  • 2021.10.13(수) 07:00

1959년 국내 첫 TV 애니메이션 광고
앞선 마케팅으로 시장 확대에 나서
과감한 변화 통해 '트렌드 선도' 각인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얼마 전 후배와 술을 한 잔 했습니다.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이즈백 한 병이요"를 외치더군요. 옆 테이블도 비슷했습니다. 반쯤 취한 커플 사이에 귀여운 두꺼비가 그려진 파란 병이 몇 개 놓여 있었죠. 이 두꺼비는 술집이 아닌 곳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TV는 물론, 영등포의 한 쇼핑몰 1층에는 아예 '집'을 지어 놨죠. 블루투스 스피커에 올라타 있기도 합니다.

진로는 '낡은' 브랜드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가끔씩 드시던 기억만 날 뿐 제가 직접 진로 소주를 마셔본 일은 없습니다. 주로 '참이슬'을 마셨죠. 이런 오래된 브랜드가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신선함이 떨어지니까요. 하지만 진로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소주에서 우리의 소주로 시나브로 변신하고 있죠. 그 비결은 늘 최초의 역사를 써 온 진로 소주의 '마케팅'이었습니다.

남다른 '최초'의 마케팅 역사

여러분들은 혹시 국내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광고가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정답은 바로 진로 소주를 생산하던 서광주조의 '진로송' 광고 입니다. 심지어 1959년에 제작된 광고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CF는 신동헌 화백이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신 화백은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거물이었습니다. 국내 최초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풍운아 홍길동'의 감독이기도 하죠.

진로가 이처럼 획기적인 마케팅 기법을 도입한 것은 진로의 성장사와 그 맥을 같이합니다. 당시 소주 시장의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진로는 서울을 중심으로 브랜드 알리기가 급선무였습니다. 영업사원들이 몸으로 뛰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죠. 이에 따라 서광주조는 진로 소주를 알리기 위해 당시에도 생소했던 TV와 신문 등 미디어를 적극 활용합니다.

1959년 국내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CF인 진로 소주 광고 / 사진=유튜브 캡처

1959년 처음 선보인 TV 애니메이션 광고는 진로 소주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당시 CF에서 나왔던 '진로송'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흥얼거리게 만들었으니 서광주조로서는 TV CF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 됐습니다. 이런 전설적인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두꺼비 진로는 1960년대 초 서울을 대표하는 소주로 성장하게 됩니다.

다만 황금기는 짧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정부의 '양곡관리법' 탓에 희석식 소주가 급부상하면서 증류식 소주를 고집해왔던 서광주조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마침 이런 트렌드 변화를 재빨리 감지한 삼학소주가 등장하면서 소주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뀝니다. 결국 서광주조도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삼학소주가 차지한 시장을 빼앗기는 역부족이었죠.

'밀림의 바'와 '왕관 회수작전'

이에 서광주조는 삼학소주를 잡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섭니다. 당시 남산과 후암동 일대는 '밀림의 바'로 불렸습니다. '들병장수'라는 여성 소주 행상이 많았죠. 서광주조는 이들에게 진로를 공급한 후 직원들이 다시 진로를 사마셨습니다. 무슨 짓인가 싶지만, 진로가 '대세'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광주조는 1966년 사명까지 '진로주조'로 변경하며 진로에 '올인'합니다.

두 번째 카드는 '왕관 회수작전'이었습니다. 진로주조는 병뚜껑(왕관)을 개당 2원에 사들입니다. 왕관 회수작전에는 큰 비용이 들었지만 효과도 컸습니다. 가짜를 식별하게 돼 품질 관리에 유리했고 판매량 통계 정확도도 높아졌죠. 회수 과정에서 판매 현장과 유대감이 깊어져 영업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1971년 8월 2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진로 소주의 마케팅 광고 /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진로주조는 이어서 병의 금두꺼비를 찾으면 경품을 주는 '금두꺼비 찾기' 프로모션도 진행합니다. 이 프로모션은 소비자를 자연스럽게 진로에 '집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다져 둔 이미지는 1970년대 진로가 기회를 잡는 원동력이 됩니다. 삼학소주가 납세필증 위조사건으로 무너지자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친숙한 진로를 더욱 많이 찾게 됐습니다. 여기에 1976년에는 주류 도매상이 지역 소주 50%를 강제 구매토록 하는 '자도주(自道酒) 구입의무제도'까지 도입됩니다. 인구가 많은 서울이 근거지였던 진로에게 큰 호재였죠. 마침내 진로의 전성기가 열립니다.

'낡은' 진로, 새로운 전성기를 찾다

진로의 성공으로 진로주조는 '진로그룹'으로 성장합니다. 한때 재계 26위까지 도약하죠. 하지만 1997년 IMF와 함께 위기가 닥칩니다. 수많은 계열사가 팔리고 시장 상황이 바뀌었죠. 고급 소주 시장은 위축됐고,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함께 부드러운 소주가 대세가 됩니다. 두산의 '그린'이 진로의 '순한진로'에 완승을 거둔 것이 이 때의 일입니다.

진로는 '참이슬'로 얻은 경험을 활용해 부활합니다. /사진=하이트진로

이 때 '마케팅 DNA'가 다시 한 번 진로를 구해냅니다. 진로는 1998년 '참이슬'을 내놓습니다. 첫 모델로 배우 이영애 씨를 발탁했습니다. 주류업계 사상 첫 여성 모델이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소주 마케팅 국룰'이 됩니다.

참이슬은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리며 '대세'가 됩니다. 덕분에 진로는 그룹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2005년까지 살아남은 후 하이트맥주에 인수됐습니다. 물론 참이슬의 대성공과 함께 진로 소주는 조금씩 잊혀졌지만요.

/사진=하이트진로

하지만 진로는 훗날 참이슬 덕분에 부활하게 됩니다. 하이트진로는 2019년 '진로 이즈백'을 선보입니다. 진로 이즈백은 기존 진로와 '병'만 닮은 제품이죠. 도수는 원조보다 낮은 16.9도입니다. 마스코트인 두꺼비도 듬직하기보다는 귀엽습니다.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버렸죠. 압도적 시장 1위인 참이슬을 통해 얻은 시장 트렌드 데이터와 마케팅 노하우가 없었다면 이런 결정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진로 이즈백은 상상 이상의 ‘대박’을 터뜨립니다. 출시 72일만에 연간 판매 목표였던 1000만병을 달성했습니다. 마스코트인 두꺼비는 '트렌드의 상징'이 됐습니다. 과거의 향수를 살리면서도 틀을 깨고 트렌드를 공략한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앞으로의 진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윤호섭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소주브랜드팀장께 들어보겠습니다.

"도전적 자세가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윤호섭 팀장. /사진=하이트진로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하이트진로 마케팅실에서 소주 브랜드를 운영·관리하는 팀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윤호섭입니다.

-진로가 그 동안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대와 소비자는 변화합니다. 과거의 성공이 다음 번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진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소주의 본질적 가치를 전달하고, 시대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항상 도전적인 자세로 겸손하고 새롭게 임해온 것이 역사를 만든 비결 아닐까요.

-진로는 과거 '표준형' 소주였지만, 지금은 저도수 소주를 대표합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데요.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주의 원조'라는 본질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면 도수를 낮춰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대 과거 모든 진로의 디자인을 조합해 최적의 디자인을 만들었고, 수많은 시음 테스트와 소비자 조사를 거쳤죠. 그 결과 진로의 최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라벨과 병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지금의 디자인이 탄생했습니다. 맛은 시대가 원하는 깔끔한 음용감을 구현했습니다.

-장수 브랜드를 활용해 젊은 층을 공략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참이슬이 명실상부한 1등 소주로 대표 이미지를 선도하고 있었지만, 후발 브랜드에 비해 젊고 트렌디한 이미지는 부족했습니다. 참이슬의 대표성을 유지하면서도 젊은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 젊은 소비자를 주 커뮤니케이션 타깃으로 정했습니다.

-최근에 진행한 마케팅 중 기억에 남거나 고객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사례가 있으실까요.

▲모든 업무에 소중한 노력이 깃들어 있어 딱 집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저희가 꾸준히 만들고 있는 진로 굿즈를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사용하고, 개인 SNS에 인증하는 모습을 보면 피로감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국내 대표 제품 중 하나를 마케팅하는 데에는 부담과 자부심이 모두 클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부심이 부담과 책임감보다 더 큽니다. 덕분에 어려운 프로젝트와 상황을 만나게 됐을 때도 모든 팀원이 합심해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진로의 목표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진로는 출시 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참이슬과 함께 소주 브랜드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죠. 앞으로 더욱 진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대 소주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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