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점 업계의 숨통이 트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해외 단체여행객 방문이 시작되면서다. 업계에서는 사업 정상화 준비가 한창이다. 신규 채용뿐만 아니라 휴직 직원 복직도 이뤄지고 있다. 내·외국인을 겨냥한 마케팅 경쟁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다만 '진짜 회복'은 아직 요원하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중국·일본인 관광객의 회복은 여전히 더뎌서다. 아울러 오랜 기간 방치됐던 관광 인프라 복구도 해결 과제다. 치솟는 유가도 변수다. 업계는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서서히 열리는 '하늘길'
최근 면세점에는 해외 단체여행객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7일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는 말레이시아 단체관광객이 방문했다. 현지에서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기업의 임직원 150여 명이 포상여행차 방한했다. 지난 6일에도 태국인 단체 관광객 170여 명이 롯데면세점 제주점을 찾았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세기로 제주도를 찾은 첫 대규모 해외단체 여행객이다. 신라면세점도 문을 닫았던 제주점을 2년2개월만에 재개점해 태국인 단체관광객을 맞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 방문객은 6만5283명으로 전달(약 5만명)보다 30% 늘었다. 내국인 방문객도 70만3119명으로 전월(53만1153명)보다 32% 증가했다. 여객 수요 회복도 빠르다. 지난달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 여객 수는 총 93만9709명으로 나타났다. 공사가 자체 예측했던 수요를 넘어선 수치다. 업계는 이달 월별 공항 여객이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면세업계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개점휴업 상태에서 벗어나 사업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증가한 수요를 대비해 신규 채용에도 나섰다. 롯데면세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지난달 신입사원 일반전형 채용을 진행했다. 해외여행객 대상 다양한 마케팅도 진행 중이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해외여행객을 대상으로 할인 프로모션과 다양한 멤버십 서비스를 꺼내 들었다.
"중국·일본이 돌아와야"
다만 아직 실속은 없다는 평가다. 동남아 단체여행객 중심의 방문에 그쳐서다. 주 고객층이었던 중국, 일본인 단체여행객이 돌아와야 하지만 회복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이어가며 해외여행의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입국 절차만 간소화했을 뿐 출국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이는 매출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달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3833억원으로, 전월 대비 17% 줄었다. 면세점을 찾은 내·외국인 수는 전월 대비 늘었지만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따이공(보따리 상인) 매출이 감소한 탓이다. 하늘 길이 열리기 시작한 지난 1분기에도 주요 면세점들이 적자를 기록했던 것도 이때문이다. 신라면세점을 제외하고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면세점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업황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말 진행했던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 입찰전에도 지원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전망이 나아졌다고 보는 업체가 없는 것"이라며 "시내면세점의 매력이 떨어진 데다, 중국 일본 관광객의 복귀도 언제일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전 돌입…"재기 발판 필요"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걸림돌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기대만 높을 뿐 아직 여전히 많은 국가가 국경을 열지 않고 있다. 중국·일본 관광객의 빠른 복귀도 장담할 수 없다. 사드 갈등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여파가 여전하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치솟고 있는 유가도 악재다. 이로 인해 항공권의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는 해외여행 수요 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업계는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란 판단이다. 오프라인 사업을 재정비하며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점을 올해까지만 운영키로 결정했다. 대신 면세품 라이브 방송을 늘리는 등 온라인몰에 힘을 주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업계의 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마케팅 여력이 모자란 중소 면세업체는 살아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세 한도 폐지 등 업황 회복을 위한 규제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면세업계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받았다. 여행객이 돌아오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지만, 아직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정부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하지만 면세 한도 폐지 등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은 아직 뚜렷히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