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업계가 2L급 대용량 페트(PET) 맥주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기존 1.6L 제품보다 한 잔 이상 많으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수준을 유지하는 '가성비 전략'을 내세웠다. 최근 식품업계의 가격인상·고물가 기조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존 1.6L 페트에 비해 휴대성 등에서 큰 장점이 없어 '반짝 시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점인 가성비 역시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어서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진짜 '가성비' 맥주일까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는 지난 추석을 앞두고 나란히 대용량 페트 맥주 신제품 출시를 알렸다. 먼저 7일에는 하이트진로가 1.9L 테라 신제품을 공개했다. 기존 1.6L 페트와 지름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높이를 높여 용량을 300ml 늘렸다. 냉장고 보관과 그립감 등을 고려한 안배다. 오비맥주는 이튿날인 8일 '카스 2.0 메가 페트'를 선보였다. 하이트진로의 신제품보다 용량이 100ml 많다. 종이컵 기준으로 기존 1.6L 페트보다 2잔이 더 나온다.
두 제품 모두 '가성비'를 최대 장점으로 내세웠다. 한 발 앞서 판매를 시작한 오비맥주의 카스 2.0은 GS더프레시 기준 6170원에 판매 중이다. 100ml당 가격이 309원에 불과하다. 카스 1.6L는 5380원으로, 100ml당 가격이 336원이다. 용량은 캔맥주 1캔 분량이 넘는 400ml를 늘리면서 가격은 790원만 올랐다. 카스 355ml 캔이 시중에서 1600~20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추가된 용량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하이트진로의 테라 1.9L는 이달 하순부터 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직 판매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출고가를 고려하면 카스 2.0과 비슷한 ml당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예상된다. 카스 2.0보다 100ml이 적은 만큼 가격은 카스 2.0보다 소폭 저렴할 전망이다. 하이트진로 측은 "슈퍼마켓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할 예정"이라며 "채널에 따라 5000원 초반에서 7000원 초반으로 가격이 책정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에 이은 맥주업계 3위 롯데칠성음료는 대용량 페트 맥주를 출시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트 맥주 시장이 전체 맥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클라우드의 시장 점유율도 낮은 만큼 대용량 라인업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제품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페트맥주=1.6L' 기준 바뀔까
대용량 페트 맥주는 타깃층이 분명하다. 음주량이 많지 않은 소비자들은 개봉 후 보관 시 탄산이 빠져나가는 페트 대신 캔맥주를 선호한다. 맥주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학교 MT 등의 모임,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중장년층이 페트 맥주의 주 고객층이다. 휴대와 보관, 뒷처리가 편리한 캔맥주를 선호했던 캠핑족들도 최근에는 페트 맥주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캠핑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부피가 큰 페트 맥주도 넉넉하게 보관할 수 있는 큰 사이즈의 쿨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페트 맥주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1.9~2L 제품은 기존 1L와 1.6L 제품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2L급 맥주는 용량이 기존 1~1.6L 대비 25~100% 늘어난 반면 부피는 크게 늘지 않아 쿨러에 넣어 휴대하기에 간편하다. 맛보다 편의성·휴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5~6L 케그 맥주를 구매하던 소비자들도 2L 페트를 선택할 만하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 역시 기존 제품들보다 가성비가 높은 2L급 제품에 손을 뻗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가정채널 비중이 늘어난 것도 페트 라인업을 확대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이전 40% 수준이던 가정채널 비중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혼술·홈술 트렌드에 힘입어 한 때 60%를 웃돌았다. 올해 들어 외식 수요가 회복되면서 다시 비중이 낮아졌지만 이미 확대된 홈술 수요가 유지되며 5대 5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가정채널용 제품인 페트 라인업을 세분화하는 것 역시 가정채널 공략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포지션 애매" 비판적 시선도
대용량 페트 제품이 시장에 자리잡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기존 1.6L 제품과 차별점이 크지 않다고 보는 시선이다. ml당 가격을 따져가며 가성비를 찾기보단 직관적으로 최종 소비자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선택할 것이란 분석이다.
용량을 늘리며 페트병의 외형이 변한 것도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비맥주의 카스 2.0은 용량을 400ml 늘리며 기존 1.6L보다 지름이 넓어졌다. 손이 작은 사람이라면 한 손으로 잡고 따르는 데 거북함을 느낄 수 있다. 냉장 매대에서도 기존 제품보다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한다. 하이트진로는 그립감을 유지하기 위해 지름은 그대로 유지하고 높이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이 경우에도 제품의 키가 커진 탓에 매대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같은 브랜드의 맥주들이 용량만 세분화되면서 영업 일선에서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제품을 매대에 넣으려면 기존 제품의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 결국 자사 제품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기존 제품에 밀려 자리를 얻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반대로 카스 2.0과 테라 1.9가 시장에 안착하면 기존의 1.6L 페트가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은 2L 제품으로 이동하고 편의성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는 캔맥주나 1L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든 전체 시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잠식(cannibalization)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페트 맥주의 소비층이 제한된 상황에서 1.6L와 큰 차이가 없는 2L 제품이 큰 반향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신규 소비층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1.6L 제품과 매출을 나누는 정도의 제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