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로 만 돌던 11번가 매각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11번가 측은 손사래 치며 부인하지만 소용없습니다. 무엇보다 11번가가 처한 상황이 매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니까요. 여러 근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오더니 금주부터 급물살을 탄 분위기입니다.
속단할 순 없지만 매각이 성사된다면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미칠 파장은 큽니다. 의미도 깊고요. 지마켓·위메프·티몬·인터파크·11번가 이커머스 1세대가 완전히 저물고 쿠팡·네이버·신세계·큐텐으로 재편되는 변곡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국내 자본으로만 이뤄진 토종 커머스의 전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더욱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11번가 매각 급한 SK스퀘어
최근 이커머스 업계의 뜨거운 감자는 큐텐의 11번가 인수 시도입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큐텐은 올해 여름 11번가의 최대주주인 SK스퀘어에 지분 인수 의향을 밝히고 수개월째 11번가의 실사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인수 방식 등을 놓고 SK스퀘어와 딜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M&A 딜은 철저한 비밀로 부쳐집니다. 소문이 벌써 파다한 것을 보면 진전이 꽤 된 것으로 보입니다.
큐텐은 싱가포르의 이커머스 기업입니다. 지난해 티몬과 인터파크커머스를 연달아 인수하고 올해 위메프까지 품에 안으며 국내 커머스 업계의 태풍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번 협상의 키는 큐텐이 11번가의 재무적 투자자(FI)인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의 지분 18.18%를 얼마에 살 것인가입니다. SK스퀘어는 과거 2018년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으로 구성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고 해당 지분을 넘겼습니다.
당시 투자 조건이 5년 내 11번가의 IPO(기업공개)였습니다. 만약 기한 내 성공하지 못하면 SK스퀘어가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에 투자금에 8%의 수익을 붙여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SK스퀘어는 결국 이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이 투자금 회수 시한을 연장해주면서 일단 한숨 돌렸지만 SK스퀘어로서는 안심할 겨를 없이 하루빨리 11번가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왕년엔 업계 2등…쇠락 이유는
11번가의 실적은 연일 하락세입니다. 지난 2019년 1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이후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데 SK스퀘어 입장에서 아픈 손가락이죠. 2020년에는 98억원, 2021년에는 69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영업손실이 1515억원에 달했습니다. 점유율 역시 2018년만 해도 이베이코리아에 이어 이커머스 업계 2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이젠 7%대로 쪼그라든지 오래입니다.
선두업체 11번가가 뒤처진 것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던 영향이 큽니다. 쿠팡은 로켓배송 등 서비스를 내세워 점유율을 꾸준히 넓혀 갔습니다. 반면 11번가는 그들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 탓에 시장에서 점점 밀려났습니다. 그사이 네이버와 신세계 등 타 업종 사업자의 진출도 이어져 입지가 더 좁아졌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과거의 영광으로 버티곤 있지만 이젠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물론 11번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선보여 왔습니다. 미국 아마존과 야심 차게 선보인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와 '슈팅배송'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SK텔레콤과 제휴한 멤버십 서비스인 '우주패스'도 있습니다. 이는 11번가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빼들었던 히든 카드였죠. 하지만 괄목할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습니다. 이젠 경쟁자들이 너무 앞서 있는 탓이었죠.
11번가 매각이 갖는 의미
업계에서는 딜 성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간은 없고, 실적 반등은 요원하고, 이렇다 할 성장 가능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큐텐밖에 답이 없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실현된다면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미칠 파장은 클 겁니다. 주요 플레이어가 압축되며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상 점유율 쿠팡 24.5%, 네이버 23.3%, 큐텐(위메프·티몬·11번가 11.6%), 신세계(쓱닷컴·지마켓 10.1%), 4강으로 변화합니다.
특히 쿠팡을 제외한 1세대 이커머스 기업이 모두 매각 수순을 밟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국내 첫 인터넷 경매 사이트 옥션과 G마켓은 각각 2001년 2009년 이베이코리아에 매각됐습니다. 이후 2021년 이베이코리아가 신세계에 인수됐죠. 쿠팡과 3대 소셜커머스로 불렸던 티몬과 위메프도 지금은 큐텐에 매각됐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11번가만 오롯이 살아남아 1세대 이커머스라는 자존심을 지켜왔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자본으로만 이뤄진 토종 이커머스가 전멸한다는 점이 뼈 아픕니다. 11번가는 SK스퀘어(80.26%) 나일홀딩스 유한회사(18.18%) 등 한국 자본으로 이뤄진 이커머스입니다. 순수 한국 지분으로만 구성된 커머스는 이제 롯데온이 유일합니다. 다만 롯데 역시 순수 한국 기업으로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죠. 한국 기업으로 오해받는 쿠팡은 미국 상장법인 쿠팡 아이엔씨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미국 기업입니다.
물론 아직 앞날은 모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 기업 간의 M&A죠. 막판에 협상 테이블이 엎어지는 경우도 있니까요. 11번가 역시 이번 매각 딜에 대해 "어떤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딜로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전과 후'의 분위기가 명확히 달라질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모든 것은 11번가에 달렸습니다. 국내 커머스 업계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참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