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와 큐텐의 지분 매각 협상이 불발로 끝났습니다. 11번가의 모기업 SK스퀘어가 큐텐에 협상 중단을 통보한 건데요. 지분 가치 책정과 비율 등을 두고 양측의 이견이 컸던 만큼 현재로서는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 관측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이 살아있다고 점칩니다. 큐텐을 대체할 마땅한 인수 후보군이 없는 데다가 큐텐 입장에서도 11번가는 놓칠 수 없는 매물이기 때문입니다.
SK스퀘어와 큐텐은 지난 9월부터 줄다리기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관건은 큐텐이 11번가의 재무적 투자자(FI)인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의 지분 18.18%를 얼마에 살 것인가 였습니다. SK스퀘어는 지난 2018년 국민연금 등으로 구성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고 해당 지분을 넘겼습니다. 당시 조건이 5년 내 11번가의 IPO(기업공개)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고 결국 지분 매각으로 선회했습니다.
당초 업계에선 딜 성사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SK스퀘어에서 먼저 공동경영을 제안하기도 했고요. 큐텐도 장기간 실사를 벌일 정도로 진심이었죠. 무엇보다 11번가를 빨리 매각해야 하는 SK스퀘어의 상황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만일 매각을 못하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지게 되니까요. SK스퀘어가 FI에 투자금에 8%의 웃돈을 붙여 돌려주거나 '드래그얼롱'(동반매도요구권)을 통해 11번가는 강제 매각을 당해야 합니다.
SK스퀘어는 빠르게 새로운 인수 대상자를 찾는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알리바바, 아마존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다만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리바바는 중국의 대표 이커머스죠. 가성비 상품이 인기를 끌며 최근 국내 영향력이 매우 커졌습니다. 연내 한국 시장에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공언할 만큼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도 있죠. 자본력도 충분하고 SK스퀘어와 여러 가지로 '니즈'가 잘 맞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반중 정서라는 큰 리스크를 넘어야 합니다. 11번가가 중국 자본으로 넘어간다면 정치권 등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최근 국감에서도 알리바바 등 중국 플랫폼들의 가품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죠. 국내 소비자의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사실상 성사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아마존은 어떨까요. 아마존은 사실 한국 시장에 대한 니즈가 크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마존은 지난 2020년부터 11번가와 협업해 직구관을 만드는 등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11번가와 아마존의 협업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죠. 협력 정도로 만족할 가능성이 큽니다. 굳이 한국에 직접 진출해 쿠팡 등과 진흙탕 싸움을 할 생각이 없을 겁니다. 이는 과거 이베이코리아가 한국에서 떠난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큐텐 말고는 현재 인수 후보군이 마땅찮은 것이 11번가의 현실입니다. 물론 매각이 여의치 않다면 SK스퀘어가 FI의 지분을 다시 사오면 됩니다. 다만 SK스퀘어의 자금 여력이 될지는 물음표입니다. 특히 11번가의 재무 상황이 좋지 않죠. 최근 적자를 줄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규모가 큽니다. 올해 3분기 영업손실만 910억원에 달합니다. 동반매도요구권도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상 선례가 많지 않아 이는 극히 희박한 경우로 봅니다.
사실상 진퇴양난인 SK스퀘어가 큐텐과 다시 협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 겁니다. 큐텐 입장에서도 11번가를 품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을 겁니다. 만일 큐텐이 11번가를 인수하면 큐텐그룹(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의 시장 점유율은 신세계그룹 쓱닷컴·지마켓·옥션 등을 앞질러 3위가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쿠팡이 24.5%로 1위, 네이버가 23.3%로 2위입니다.
협상 재개에 물꼬를 터 줄 변수로 SK그룹의 인사도 거론됩니다. 앞으로 SK스퀘어와 11번가의 임원진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큐텐과의 협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물이 온다면 다시 협상이 재개될 수도 있을 겁니다. 보통 M&A에서 수장이 갖는 권한은 큽니다. 큐텐과 SK스퀘어의 협상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현재 시간이 모자라는 쪽은 SK스퀘어일 겁니다. 지체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건 11번가니까요. FI에게서 지분을 다시 사오든 다른 곳에 매각을 하든 하루빨리 결과물을 내야할 겁니다. 지금도 쿠팡 등 다른 이커머스 경쟁자들은 빠르게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11번가 내부 임직원들의 동요도 크고요. 큐텐도 이 점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과연 SK스퀘어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11번가의 미래가 참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