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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스팩 붐과 씨티그룹의 선택과 집중

  • 2021.04.16(금) 15:35

13개국 소매금융 철수에 한국도 포함
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 금융허브 유지
'과감한 선택과 집중' 국내은행에 시사점

최근 소문으로만 떠돌던 씨티그룹의 한국 소매금융 철수가 현실화했습니다.

미국 씨티그룹은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에서 소매금융을 접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는데요. 씨티은행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은 국내 은행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미지=미국 시티그룹 홈페이지

이번에 발을 빼기로 결정한 국가들을 보면 면면이 화려합니다. 한국 외에 중국과 인도, 러시아, 호주 등 덩치가 꽤 큰 곳은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도 포함됐습니다. 왜 한국이 제외됐냐고 따지기엔 시장 규모나 성장성 면에서 더 주목받는 국가들이 너무 많았던 셈이죠. 한국뿐 아니라 인도나 호주에서도 씨티그룹의 결정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씨티그룹의 한국 소매금융 철수는 그간 수차례 반복적으로 제기됐는데요. 2010년대 초반까지 소매금융을 확장하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한국씨티그룹캐피탈과 씨티크레딧서비스신용정보를 매각했고 최근에는 디지털화를 앞서 점포를 급격히 줄여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씨티은행의 지난해 말 현재 예수금 점유율은 1.95%로 2019년 2%대에서 1%대로 더 떨어졌습니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20% 안팎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부진합니다. 대출금 점유율 역시 1.63%로 이미 1%대로 떨어진 상태인데 감소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영업할 매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죠.

최근 씨티의 철수설을 두고 일각에선 배당 제한이나 관치 금융 등 국내 요인을 지목하기도 하지만 씨티그룹의 전략적 이유가 훨씬 더 커 보이는데요. 앞선 철수 결정 국가들보다는 계속 자산관리 중심으로 소매금융 재원을 집중하기 위해 남겨놓은 국가들을 보면 좀 더 선명해집니다.

이번에 소매금융을 유지하기로 한 런던과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홍콩, 싱가포르는 공히 아시아 금융 허브 지역입니다. 씨티그룹은 아시아 소매금융 철수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서도 홍콩과 싱가포르에선 자산관리 부문을 적극적으로 키웠는데요. 정부와 금융당국 등이 한국을 아시아 금융허브로 키우겠다고 공언을 하고 무던히 애를 쓰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씨티그룹의 선택과 집중의 벽에 부딪힌 셈입니다.

본국에서 소매금융에서 강점을 보유했던 씨티그룹은 해외 소매금융에서 선택과 집중뿐 아니라 수익 구조 전반에서도 전략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씨티그룹은 올 1분기 실적에서 주식 트레이딩 수익이 2009년 이후 가장 큰 수익을 달성했는데요. 그 뒤에는 스팩(SPAC) 붐도 일조를 했습니다. 

스팩은 비상장기업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로 공모로 액면가에 신주를 발행해 다수의 개인투자자금을 모은 후 상장한 후 3년 내에 비상장 우량기업 합병하는 구조인데 최근 미국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성장했습니다. 올 1분기 미국 은행들의 실적 호조에는 주식과 스팩 투자 붐이 자리했습니다.

씨티그룹의 경우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주식자본시장 부문 규모가 작음에도 스팩 공개 관련 수수료에서 이들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 덕분에 주식발행 수수료가 8억7600만달러로 치솟았고 평소 10억달러를 밑돌던 주식 트레이딩 수익은 15억달러에 육박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글로벌 소매은행 부문에선 14%나 수익이 줄면서 전체 분기 수익도 후퇴를 했죠.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세계 최대 신용카드사인 씨티의 카드 부문 수익도 14%나 급감했습니다. 

물론 씨티은행 실적을 끌어올린 스팩 시장의 활황이 마냥 지속될 것으로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향후 씨티그룹의 방향이 소매보다는 투자은행(IB) 쪽에 계속 무게가 실릴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13개 국가에서 소매금융을 철수하는 대신 기업금융 쪽을 유지할 계획을 밝힌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씨티은행의 턱없이 낮은 국내 점유율만 놓고 보면 국내은행들로서는 씨티은행의 한국 소매금융 철수 자체는 크게 신경 쓸 변수가 못됩니다. 다만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고 판단한 해외 소매금융을 과감히 접고 IB에 집중키로 한 결정에 대해선 국내은행도 분명 곱씹어 볼만한 합니다. 

국내 은행들 역시 해외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기업금융 쪽은 해외 투자은행(IB)이나 국내 증권사에 상대적으로 밀리면서 소매금융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는 여건입니다. 게다가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이 대만의 인터넷전문은행 인허가를 취득해 라인뱅크 대만 설립에 나서는 등 빅테크들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 소매금융 시장 공략에 열심입니다. 이와 맞물려 국내은행들도 디지털 뱅크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는데요. 

따라서 씨티그룹의 이번 결정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물론 국내은행들도 글로벌 은행들의 전략 변화와 그 이면은 물론 해외시장에서 소매금융 경쟁력이나 장기적인 성공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선택과 집중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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