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주식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수익성·자산가치 등이 비슷한 외국기업보다 저평가되는 현상)를 해소하기 위해 자본시장 체질개선에 나선다. 특히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기업(업종)을 중심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인 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국내 금융지주(은행주)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계획을 드러낸 이후 은행주 주가가 크게 오르며 시장 기대감을 키웠다.
정작 금융권은 고민이 많다. 그 동안 주가 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쳤는데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적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금융시장 리스크에 대비한 손실흡수능력 확충도 요구하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와 충당금 적립 규모를 늘려야 하는 양면적인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평균 밑도는 은행주 PBR, 어떻게 살릴까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 평균 PBR은 1.05배 신흥국 평균(대만·중국·인도)과 선진국 평균(미국·일본·영국)은 각각 1.61배와 3.1배다.
반면 국내 금융지주 PBR은 평균 0.41배 수준에 그친다. KB금융지주가 0.52배로 가장 높고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은 0.46배와 0.45배, 우리금융은 0.37배다. 지방금융지주 중에선 JB금융이 0.51배, BNK금융과 DGB금융은 각각 0.25배와 0.3배를 기록하고 있다.
PBR은 주가순자산비율로 시가총액을 해당 기업의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주가가 기업의 순자산 대비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국내 금융지주들의 경우 주가가 순자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상은 PBR 1배 이하인 기업들일 것이라는 게 시장 분석이다. 금융위는 당기순이익에 초점을 맞춘 PER(주가수익비율)과 달리 PBR은 자본 가치를 고려해 자본집약적 장치산업 비중이 큰 국내증시 평가에 적절하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구상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는 PBR과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투자지표 비교공시, 상장사의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지배구조보고서 등에 기재하는 방안, 주주가치 제고 우수업체 등으로 구성된 지수와 ETF 개발 등이다.
PBR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기업들은 수익성을 개선하거나 주주환원을 강화해야 한다. 은행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지주들은 코로나19 이후 가파른 실적 성장을 이어왔다. 급증한 대출자산과 금리 인상으로 이자이익이 급증한 까닭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주환원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가 상승은 제한적이다. 관치금융과 이자이익에 치우친 사업구조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은행 등 금융사들은 비이자이익 증대 등을 위한 신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규제산업의 특성상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기업 밸류업을 위해선 주주환원 정책 강화가 핵심 방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부가 참고한 일본의 사례 역시 주주환원책을 강화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진 않았지만 기술적으로는 주주들이 요구하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주환원과 손실흡수능력 확충, 부담 커진 은행
금융지주들은 늘어난 이익을 바탕으로 주가 부양 등을 위해 주주환원을 강화하고 있다. 분기별 현금 배당을 비롯해 자사주 매입·소각 등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KB금융은 지난해 주당 배당금을 3060원으로 전년보다 4% 늘렸고, 3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결정했다. 하나금융은 부진한 실적에도 현금배당 뿐 아니라 자사주 매입·소각을 의결했다. 지방 금융지주들 역시 이전보다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결정하며 주주환원율을 전년보다 끌어올렸다.
금융지주 실적을 책임지는 은행들은 주주환원 강화와 동시에 충당금을 늘리고 손실흡수능력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우려가 본격화됐고,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지난해부터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자산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이전보다 커지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버퍼 확충을 요구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위 결정에 따라 오는 5월부터는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적립 수준도 1%로 상향 조정된다.
금융지주들은 금융당국 요구뿐 아니라 과거 금융위기 등의 경험을 기반으로 기준 이상의 손실흡수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다. 다만 대내외 금융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밸류업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도 은행 등은 작년보다 충당금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당국에 의해 은행들이 이자이익을 환급하는 것을 보면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PBR 개선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주주환원 강화와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동시에 진행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련 ETF 개발 등으로 수급은 나아질 수 있고 저PBR 개선에 대한 문제인식을 공유한 것은 긍정적"이라며 "관건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느냐인데 단순히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을 강화한다고 PBR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