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연말 '대출절벽'을 막겠다며 올해 도입한 월·분기별 가계대출 총량관리 체계를 넉 달 만에 손봤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7월 말 이미 연간 목표를 2조원 넘게 웃돌았고 은행들은 대출 문을 잇달아 닫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5% 목표를 고수하던 당국은 이를 3%로 두 배 올렸다. 대출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데다 금융사에 목표 준수를 압박해 실수요자 불편까지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2026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통해 올해 관리 대상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지난해 관리 실적 1.7%보다 낮은 1.5%로 제시했다. 연말에 대출이 한꺼번에 막히는 일을 막겠다며 연간 총량을 월·분기 단위로 나눠 관리하는 방식도 처음 도입했다. 이에 따라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는 정책성 대출을 제외하고 총 4조3363억원으로 정해졌다.
대출 수요 확대 예고됐는데…5월부터 목표 흔들
문제는 목표를 세우기 전부터 대출 수요가 늘어날 신호가 감지됐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지난 3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에 따른 매물 출회로 주담대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금융권을 중심으로 집단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총량 목표는 5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5월 6조9000억원, 6월 7조6000억원 늘었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4월 6000억원 감소에서 5월 3조7000억원 증가로 돌아섰고 6월에도 3조3000억원 늘었다. 주담대도 같은 기간 각각 3조2000억원, 4조3000억원 증가했다. 당시 코스피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금융권에서는 늘어난 신용대출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흘러간 것으로 봤다.
금융위는 6월 말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기타대출 증가세를 지적하며 목표를 지속해서 지키지 못한 금융회사에 대한 현장점검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목표 자체를 다시 검토하기보다 금융회사별 목표 준수를 압박한 것이다.
7월 말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3821억원으로 연간 목표를 2조원 넘게 초과했다. 일부 은행은 주담대 한도를 반 토막 내고 대출모집인·비대면 채널 접수를 막았다. 연말에나 걱정하던 대출한파가 한여름부터 찾아온 것이다. ▷관련기사: [가계대출 점검]일찌감치 닫힌 은행 대출 창구(2026년 8월10일)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의 입장은 강경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5일 "가계대출 증가율 1.5% 완화는 현재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같은 달 29일 부동산 시장과 금융을 '절연'하겠다며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보름도 지나지 않아 입장이 바뀌었다. 금융위는 목표를 3%로 높였다. 내부 관리 기준으로 보면 연간 가계대출 증가 여력은 30조원 안팎에서 60조원 안팎으로 늘어난다.▷관련기사 : 가계대출 총량 1.5→3% 두배 껑충…"집단대출·청년 우선 배정"(2026년 8월13일)
넉 달 만에 목표 두 배…예측 실패 공방

지난 14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 백브리핑에서는 목표를 4달 만에 두 배로 높인 건 예측 실패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금융위는 상황 변화에 따른 조정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이 대책 발표 전날인 지난 12일 사전 브리핑에서 "1.5%를 책정했을 때 상황과 지금 상황은 확연하게 다르다"고 설명한 데 이어 윤덕기 금융위 거시금융팀장도 "경상성장률도 많이 바뀌었고 여러 제도 변화로 주택거래량이 굉장히 늘었다"고 답했다. 이어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목표를 무조건 고수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안 하는 것"이라며 "변화를 반영해 신속히 대응하는 게 정부 본연의 역할"이라고 했다.
올해 명목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목표를 지난해 실적 1.7%보다 낮은 1.5%로 잡은 게 모순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윤 팀장은 "목표를 정할 때 경상성장률과 가계부채 규모·위험요인, 주택시장 상황 등을 함께 본다"며 "성장률에 따라 목표가 산식처럼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총량 목표는 장점도 명확하지만 단점도 있다"며 "올해 운영하면서 미비점이 있었다면 내년 목표를 설정할 때 보완해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가계대출 점검]"대출 잡는다고 집값 해결 안돼"…풀어도 묶어도 문제(2026년 8월11일)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이번에도 주먹구구식 총량관리는 그대로 둔 채 한도만 늘린 '땜질 처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사별 대출 여력과 실제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한도를 정하면 연말 또다시 '대출한파'가 닥치거나 대출이 풀릴 때마다 신청이 몰리는 '오픈런'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