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최근 가계대출 상황을 두고 한 은행권 관계자가 내놓은 진단이다. 총량 규제를 풀자니 은행 간 대출 경쟁이 다시 불붙을 수 있고, 그대로 두자니 한여름에 시작된 '대출 한파'가 연말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아파트 잔금대출 등 일부 집단대출만 총량관리에서 제외할 경우 일반 주택담보대출 차주와의 형평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관련기사: "잔금대출 안나와 입주 못해"…대통령 "황당무계한 일 최소화"(7월23일), [인사이드 스토리]집 짓는다며 대출은 통제…딜레마 빠진 부동산금융(7월28일)
서울·수도권 집값이 여전히 오르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완전히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차주별 규제가 이미 촘촘한 만큼 가계대출 총량까지 일률적으로 묶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가계부채 건전성 관리가 아닌 집값을 잡기 위한 목적의 총량관리를 근본적으로 짚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총량 관리 고삐 죄는 은행들
금융당국은 올해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지난해(1.7%)보다 낮은 1.5%로 설정했다. 시중은행에는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면서 증가율 목표가 1.5%보다 낮은 0.7% 수준으로 적용됐다.
문제는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면서 5대 은행의 연간 총량 목표가 이미 넘어선 상태라는 점이다.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관리 목표는 정책성 대출을 제외하고 총 4조3363억원이다.
7월 말 5대 은행의 주택관련대출(집단대출, 전세대출 등 포함) 잔액은 617조9411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6조3330억원 늘었다. 은행별로는 NH농협은행이 2조6100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우리은행 1조6100억원, 하나은행 9900억원, 신한은행 6000억원, KB국민은행 5100억원 순이었다.
목표 관리를 위해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강하게 조이자 실수요자까지 대출 절벽에 내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가계대출 점검]일찌감치 닫힌 은행 대출 창구(8월10일)
은행권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대출을 선제적으로 줄이면 실수요자의 반발을 사고 대응이 늦으면 총량관리에 실패했다는 당국의 압박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규제를 세게 하면 대출절벽이 심해지고 약하게 하면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A은행 관계자는 "은행 규제만으로 대출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B은행 관계자는 "집단대출만 총량관리에서 제외하면 일반 주택 매매 차주들이 '왜 집단대출만 풀어주느냐'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전체 총량을 풀면 은행 간 대출 경쟁이 다시 시작돼 가계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총량으로 누르는 지금도 대출이 이만큼 늘었다"며 "대출부터 세제까지 이미 여러 대책을 동원한 만큼 추가로 꺼낼 카드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임시방편" vs "시장에 잘못된 신호"
총량 규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총량규제의 장기 유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총량규제 목적이 가계부채 자체를 해결하는 근본대책이라기보다 수도권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한 금융정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총량규제는 수요 억제를 위한 응급처방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미루 박사는 "대출을 막는다고 주택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수도권 주택 수요는 주택 공급 부족, 직주근접 수요, 지역 간 자산격차 등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어 금융을 통한 억제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상 GDP가 크게 늘면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가계대출 자체가 당장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미 DSR과 스트레스 DSR, LTV 등 차주별 규제가 작동하고 있는 만큼 가계대출 총량까지 별도로 제한하는 것이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환능력이 충분한 차주에게 필요한 만큼 대출을 해주는 게 금융의 역할"이라며 "총량을 제한하면 차주의 위험도를 따지기 전에 대출 한도에 막혀 필요한 사람에게까지 돈이 가지 않는 대출 부족이 심화하고 금융의 자원 배분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총량규제 부작용이 있더라도 당장 정책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전문가는 "정부가 연초부터 가계대출 총량을 숫자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만큼 중간에 규제를 완화하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계대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런 신호가 나오면 규제 완화 시점에 대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전문가는 "총량규제 아래에서도 청년·잔금대출 등 당장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대출 통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일부 예외를 두더라도 전체적인 총량관리 원칙은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하반기에도 총량관리 기조는 유지하되 대출 성격에 따라 관리 강도를 달리하는 방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규 주택 매입 등 가계부채 증가를 자극할 수 있는 대출은 억제하되 이미 계약이 이뤄진 입주자금이나 정책적으로 필요한 대출에는 상대적으로 여력을 주는 방식이다. 결국 총량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수요자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당국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