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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동걸, 왜 '승산 50%'에 올인했나

  • 2022.01.18(화) 11:01

'50% 넘는 승산'에 조선빅딜 추진했지만
'50% 가까운 질 확률' 독과점에 빅딜 좌초
"실패하면 죽일 놈이라 쓰라"던 자신감 어디로

2019년 2월2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기자실을 찾았다. 편한 자리에서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는 그는 종종 기자실에서 소규모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주제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조선 빅딜'이었다. 한 달 전 산은과 현대중공업이 맺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에 대한 조건부 양해각서(MOU)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던 때였다.

당시 이 회장은 "마지막 미션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잘못되면 직을 내놓겠다는 각오"라며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고 덧붙였다. "외국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불승인 리스크가 적지 않다. 50% 넘는 승산이 있다"라고도 했다.

기자는 이 회장에게 '승산의 근거가 뭐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시장점유율 20%(대우조선+현대중공업)가 기업결합 승인시 워치(감시)할 정도이지만 과연 금지의 대상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 시장 전체를 볼 것인지 특정 선박을 볼 것인지 등 복합적"이라고 답했다. 

이어 "시도도 안 하고 '저기 무서운 괴물이 있으니 가지마'라하고, 지지부진 깔고 앉아 우리 조선산업이 다음 20년을 가야 하냐"며 "만약 기업결합 승인이 실패하면 비즈니스워치가 나를 죽일 놈이라고 쓰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하지만 '무서운 괴물'은 3년여 만에 '조선 빅딜'을 집어삼켰다. 최근 유럽연합(EU)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두 기업이 합병하면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에서 독점적인 점유율(60%)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시점에서 다시 묻고 싶은게 있다. 왜 '50% 넘는 승산'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 말이다. 이 회장은 승률 50%에 자신의 거취를 걸었다. 2017년에 취임해 2020년 연임에 성공한 그의 임기는 2023년 9월까지다. 조선 빅딜이 무산되면서 남은 임기 동안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조선 빅딜'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은 그룹의 근간인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지배구조는 '현대중공업지주→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에서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상장사였던 현대중공업은 물적분할로 한국조선해양(상장사)과 현대중공업(비상장사) 2개 회사로 쪼개졌다. 비상장사였던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다시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재입성했다. 한국 증시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조선 빅딜'이 아니었다면 이같이 번잡하고 복잡한 과정은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빅딜이 추진되기 이전에 코스피에 상장된 현대중공업에 투자했던 주주들은 물적분할 탓에 졸지에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 주주가 됐다. 물적분할 2년 뒤 비상장사였던 현대중공업이 상장하면서 한국조선해양 주주는 '주식이 빈 껍데기가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승산 50%는 보는 시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물잔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볼 수도,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50% 넘는 승산'을 다르게 보면 질 확률이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최고경영자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질 확률 50%를 보는 보수적인 '수비형 CEO'가 있는가 하면, 이길 확률 50%를 보는 저돌적인 '공격형 CEO'가 있다. CEO가 공격수이든 수비수이든 모두 장점은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의 구조조정을 맡은 국책은행의 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은의 결정에 따라 국내 산업계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편되고, 개미들의 '주식'이 바뀌는 후폭풍이 일었다.

신중함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장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는 질 확률도 50% 가까이 되는 곳에 올인했다. 합병 발표 당시부터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결국 현실이 됐다.

'마지막 미션'이라며 이 회장이 주도한 구조조정은 그가 목표했던 종착지와는 다른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이제 그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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