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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마른 바이오텍, 현금 곳간도 비었다

  • 2022.09.08(목) 06:50

시장 얼어붙으며 바이오 업계 자금난 심화
일부 바이오텍 R&D 지출로 현금 소진 우려
"파이프라인 집중 통해 자금 유출 최소화해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국내 바이오 업계의 현금 보유고가 줄어들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금융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신약 개발 기업들의 성과 부진으로 투자 유치가 더욱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달러/원 환율이 최고점을 찍으면서 글로벌 임상 비용은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선 파이프라인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금 유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개발비 '늘고' 현금성 자산 '줄고'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20개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의 평균 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444억원이었다. 주요 기업 가운데 현금 보유액이 가장 많은 곳은 알테오젠이었다. 지난해 연말 기준 알테오젠의 현금성 자산은 2030억원이었다.

레고켐바이오의 현금 보유액은 1399억원으로, 그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레고켐바이오는 지난 2013년 기업공개(IPO) 이후 네 차례의 유상증자와 세 차례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약 2749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이어 메드팩토 1216억원, 셀리버리 693억원, 메지온 472억원이었다.

반면 지난해 연말 기준 현금성 보유액이 300억원 미만인 기업도 12곳에 달했다. 에스티큐브, 툴젠, 엔케이맥스의 지난해 연말 현금 보유액은 157억원, 126억원, 121억원이었다. 이오플로우와 카나리아바이오의 현금성 자산은 각각 67억원, 54억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현금 보유액이 적은 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개사는 평균 연구개발비로 2019년 124억원, 2020년 155억원, 지난해 163억원을 투자했다. 3년 동안 연구개발비를 가장 많이 집행한 곳은 에이비엘바이오였다. 에이비엘바이오는 3년간 총 1291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매출의 8배에 가까운 428억원을 연구개발로 썼다.

이어 최근 3년간 연구개발비 투자가 많았던 곳은 △제넥신(1257억원) △레고켐바이오(1217억원) △헬릭스미스(1071억원) 순이었다. 제넥신은 지난해 395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다. 이는 지난해 매출(368억원)보다 약 7% 많은 수준이다. 레고켐바이오와 헬릭스미스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각각 479억원, 336억원이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주식시장 침체 등 외부 조달 한계로 자금난 '심각'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바이오 기업들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중단하고 감염병 이전의 신약 파이프라인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임상을 재개하면서 임상 비용은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신약의 경우 개발 단계가 진척될수록 보다 많은 임상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바이오벤처의 주가가 반영된 코스닥 제약 지수의 올 상반기 수익률은 -8.9%다. 지난해 코스닥 제약 지수 수익률이 83%에 달했던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매출원 없이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연구개발비를 충당하는 바이오벤처는 주식시장 침체의 직격탄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달러/원 환율이 치솟으면서 해외 임상 비용 부담까지 늘고 있다. 대부분 바이오 기업은 기초 연구나 임상시험에 필요한 기자재와 시료를 해외에서 들여온다. 환율이 오르면 원부자재의 수입 원가는 물론 해외 임상 비용도 증가한다. 지난해 1100원대로 떨어졌던 달러/원 환율이 지난 5일 1365원으로 13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유망 파이프라인에 '선택과 집중' 필요

실제 바이오벤처 20곳의 지난해 연말 기준 현금성 자산과 최근 3년 연평균 연구개발비를 비교한 결과, 다수 기업이 유동성 관리 위기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연구개발비 지출로만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연내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개발비 투자 외에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와 금융이자 같은 지출 비용이 더해지면 현금 소진 속도는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오벤처의 자금난이 심화하면 임상계획 등 연구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선 파이프라인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비용을 집중하는 식으로 자금 유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금이 풍부할 당시 파이프라인을 늘리거나 다수 임상을 동시에 진행했던 때와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재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자금 조달 비용이 낮은 시기에는 사업 확장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 상승의 트리거로 작용했다"면서 "그러나 현금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선 기존 역량과 연관성이 낮은 영역으로의 확장은 역량의 낭비이며 성공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력, 자본력이 빅파마보다 열악한 바이오텍이 전문성을 가지려면 플랫폼 기술(모달리티)이나 특정 질환군 등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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