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측이 '약한 고리'인 조현준 효성 회장을 타깃 삼아 압박을 가하고, 비상장 주식을 고가에 처분하려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부사장과 공갈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 대표의 11차 공판을 열고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김 아무개 변호사가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국내 10대 로펌의 대표 변호사이자, 과거 고(故)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의 탈세 혐의 및 조 회장 횡령 혐의 등 재판서 법률 대리를 맡았던 최측근이다.
'형제의 난' 분쟁 때는 조 명예회장 지시를 받고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사와 대면, 협의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이후 당시 조 전 부사장 측 홍보대행 업무를 맡았던 박 전 뉴스컴 대표와 두 차례 통화로 소통했다.
"조석래 명예회장, 후계자 장남 다치지 않길 바라"
이날 증인은 "조 전 부사장 측이 '약한 고리'인 조 회장을 압박해 목적을 달성하려 했을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조 명예회장이 후계자로 낙점한 조 회장을 위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유도한 것이라는 얘기다.
증인은 "2014년 가을경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사와 먼저 만났는데, 며칠 뒤 그가 전화로 '박 전 대표에게 모든 권한이 있으니 그와 논의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며 "이에 박 전 대표에게 두 차례 연락했으나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초 조 명예회장의 지시를 받고 지분 정리를 비롯, 경제적 요구 등 다양한 안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고 했다"며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조 회장이 무릎 꿇고 사과하면 10분 안에 끝난다' '사과하지 않으면 조 회장은 분명 감옥 가고, 효성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차례 통화과정서 박 전 대표에게 우선 만나자고 제안했으나 '자신과 달리 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증인)와 만나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거부했다"며 "법조인도 아닌 박 전 대표가 왜 협상 전면에 나서는지도 궁금했다"고 부연했다.
조 회장을 '약한 고리'로 칭하는 까닭에 대해선 △효성가 가풍 △조 회장 성격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 간 부자관계 등을 이유로 들었다. "효성가는 기독교 집안이지만 유교적 가풍이 굉장히 강하다. 조 전 명예회장은 후계자인 장남이 다치지 않길 바랐다. 또 조 회장은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약해 충격을 받고 누구와 싸우지 못한다. 결국 '회사가 나서서라도 도와주세요'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조 회장이 힘들면 아버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조 회장은 '약한 고리'다."
증인은 2년여가 지난 후에야 조 전 부사장 측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대우조선해양 연임 비리 사건(위 사건과는 별건)서 수집된 것들을 근거로 들었다.
당시 담당 검사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조 회장에게 관련 증거를 보여줬고, 이때 조 전 부사장 측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변호인단 "전해 들은 증언뿐, 경험담도 주장 엇갈려" 반박
증인은 "2016년께 박 전 대표의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와 관련해 조 회장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었다"며 "이때 조 회장은 검사로부터 'ROE(황제의 귀환·the Return Of Emperor) 프로젝트를 아는지'라는 질문을 받았고, 관련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제서야 조 회장을 끌어내림과 동시에 조 전 부사장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을 고가에 처분하기 위함이라는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며 "그전까진 추정만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검사가 언급한 해당 프로젝트에 이러한 내용이 시사돼있었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반면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인단은 증인의 핵심 증언이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 등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담당하던 검사가 조 회장에게 관련 증거를 보여준 것도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대신문 과정서 변호인이 "해당 검사가 변호사로 새 출발을 한 후 효성 측 사건을 주로 수임하거나, 조 회장과 돈독한 관계로 지내고 있지 않나"고 묻자, 증인은 "그것까진 자세히 모른다"고 답했다.
아울러 박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전화 내용에 대한 진술이 엇갈린다고 강조했다. 해당 변호인은 "박 전 대표 기억에 따르면, 증인에게만 빠지라고 한 것이 아니라 둘 다(본인과 증인) 배제된 상황에서 효성 일가가 직접 얘기하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했다"며 "그래야 진정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효성가 '형제의 난'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13년 효성그룹을 떠났다. 사임을 결정한 당시 그는 부친인 고(故) 조석래 명예회장과 조현준 회장을 상대로 검찰에 비리를 고발하겠다며 '자신이 회사 성장의 주역'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 배포 등을 요구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보도자료 배포를 거부했고 검찰은 2022년 11월 조 전 부사장에게 강요미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기소 했다.
조 전 부사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회사의 위법·부당한 경영 방침에 반발, 감사를 진행하는 등 내부시정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가족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고 이에 사임키로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사임 이후 추문 등 유포 가능성이 있어 퇴사 관련 보도자료 배포를 요청했을 뿐이란 입장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앞서 2013년 10월 효성 비자금 수사 당시 조현준 회장이 100억원대 신주인수권부사채(BW) 홍콩 비자금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 조서에 쓰인 고 조석래 명예회장 진술이 "홍콩비자금 계좌는 조현문 사장의 것"이라는 내용에 기반한 추측이다. 친형인 조 회장도 "조현문에게 속아 그런 짓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조 전 부사장은 "관련 자료가 있어 혐의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서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7월 효성 계열사 대표들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조 회장도 동생인 조 전 부사장이 자신을 협박했다며 2017년 맞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