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이 문제다", "과도한 과금을 유도해 사행성을 조장한다"라는 얘기가 많다. 방송에서도 이 문제로 도배가 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확률형 아이템이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다. 어려운 용어나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 많아서다. 게임에 관심이 없어서 혹은 게임을 한다 해도 유료 아이템을 한번도 구매하지 않아서 모르는 경우가 있다. 열성 이용자가 아니고서야 무엇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쉽게 사안을 따라갈 수 있도록 내용을 정리해봤다. 딱딱한 기사체랑 다르게 독자들이 편히 읽을 수 있게 정리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슈를 재구성했다. 가상의 일반 독자 '겜린이'(게이머+어린이, 게임 초보자를 표현한 합성어)와 취재 기자 '겜덕후(게임+오타쿠, 게임 고수를 표현한 합성어)'가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뭘까
겜린이: 확률형 아이템이 대체 뭐야?
겜덕후: 쉽게 말해 '랜덤 박스'와 비슷해. 요즘 쇼핑몰을 보면 나오는 '랜덤 시계'랑 비슷해. 만원대 저가형부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시계가 쭉 나열됐는데, 결제를 하면 그 가운데 일부를 무작위로 보내주는 뽑기 상품말이야. 이를 게임 속에 적용한 게 확률형 아이템이지.
쉽게 말해 운이 좋으면 게임 이용자가 적은 금액으로 고성능 장비, 강화 용품 등을 손쉽게 얻을 수 있어.
겜린이: 우와~ 그럼 이용자에게 되게 유리한 거 아냐? 훨씬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사는 것과 비슷하잖아?
갖기 힘든 너
겜덕후: 근데 문제는 이 확률이 복불복이야. 막말로 돈을 수천만원어치 쏟아부었는데, 꽝이 나오면 말짱 도루묵이잖아. 한마디로 본전도 못 찾지.
겜린이: 그런데 게임 이용자들도 확률이 높지 않은 걸 감안하고 돈을 쓰지 않아? 예를 들면 확률이 낮으면 "아 이정도 금액을 쓰면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겠구나"라고 예상할 수 있잖아.
그리고 말야. 지금껏 본인이 어느 정도 지출을 할 것이라고 게임사와 상호 동의한 거라고 볼 수 있잖아. 이용자가 그 정도도 모르고 게임을 했을까. 왜 이제야 불만을 제기한 거야?
겜덕후: 겜린이 너가 얘기한 게임사와 이용자 '상호 동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야.
네 말대로라면 유저가 확률형 아이템 획득 확률을 게임 속에서 손쉽게 알 수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일부 게임사가 이 확률을 게임이 아닌 홈페이지 등 여러 경로에 흩뿌려놓는 경우가 종종 있어.
팬 커뮤니티 등을 적극 이용하는 '열성 이용자'가 아닌, 단순히 게임만 즐기는 이른바 '헤비 과금러'(게임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는 이를 찾기 어렵겠지.
왜 이용자들이 분노하나
겜린이: 그건 진짜 문제네. 일부러 확률을 찾기 어렵게 만들어 유저가 한도 끝도 없이 아이템을 사게 만들잖아. 꼼수네.
겜덕후: 최근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나오고 있어. 유료와 무료 아이템을 혼합해 확률 정보 공개를 피하는 방식이 대표적이야.
이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비롯된 거야. 게임 업계는 2015년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자율적으로 공개해왔거든.
그런데 자율 공개 대상은 유료 뽑기 아이템에 한정해. 무료는 해당하지 않지. 유료와 무료를 섞는 일명 '컴플리트 가차'란 방식을 이용하면 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 실제로 많은 게임사들이 이 꼼수를 사용하기도 해.
겜린이: 뭐야... 유저를 호구로 보는 거 아냐? 실제 어떤 사례가 있는데??
겜덕후: 엔씨소프트의 간판작 '리니지2M'를 사례로 들어볼게.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M의 최상급 무기 아이템인 '신화 무기' 제조법을 공개했어. 원작 PC게임 리니지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집행검'에 버금가는 무기야.
이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선 두 단계의 뽑기 과정을 거쳐야 해. 문제는 첫 번째 단계인 희귀·영웅·전설 제작 레시피 뽑기 확률이 기껐해야 0.25~2%에 불과하다는 거야. 100번 도전해야 겨우 한두번 정도 성공하는 거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다해도 문제야. 두번째 단계에서 이를 조합해 고대의 역사서 10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엔씨가 이 확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그 이유가 뭐냐. 고대의 역사서는 엄밀히 말하면 유료 뽑기 아이템이 아니라 확률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거야. 유저들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분개하고 있고.
제로 확률까지 나와
겜린이: 너무 확률이 낮은 것도 문제 아냐?
겜덕후: 맞아. 엔씨소프트뿐만 아니라 여러 게임사들은 강력한 장비의 뽑기 확률을 1% 밑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허다해. 카지노 룰렛 마냥 잭팟을 노린 이용자들이 지나치게 돈을 쓰도록 유도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야.
최근에는 확률 조작 논란까지 불거졌어.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에서 연거푸 두 건이나 나왔는데. 하나는 장수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에서야.
메이플스토리에서 장비에 힘, 속도 등을 높여 주는 성능 강화 뽑기 아이템을 판매했어. 그동안 넥슨은 관련 아이템 설명란에 개별 옵션을 부여하는 확률이 '무작위'라고 설명했는데, 실상은 중요한 성능은 낮은 확률로, 좋지 못한 성능은 낮은 확률의 옵션을 부여하고 있었던 게 밝혀졌지.
겜린이: 아무리 무작위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유저들은 개별 성능이 균등하게 부여될 것이라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넥슨이 선을 넘었네...
족쇄 채우려는 정치권
겜덕후: 문제가 불거지니 넥슨은 자사 게임 확률형 아이템을 더 투명하게 공개(3월 5일)하기로 했어. 대표이사 사과와 함께 말야. 더 나아가서는 유료, 무료 혼합형 아이템 확률 공개 계획까지 내놨어.
넥슨의 확률 공개 선언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어. 또 다른 피해 사례가 드러나게 됐는데. 이번에는 메이플스토리의 특정 옵션 부여 확률이 '0%'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가 밝혀진 거야. 0이란 숫자는 당첨될 확률이 없다는 거잖아.
간단히 설명해볼게. 메이플스토리에서 성능 강화 아이템은 특정 장비에 최대 3개의 능력치를 부여할 수 있어. 운이 좋다면 이 능력치 3개를 전부 동일한 걸로 설정할 수도 있지. 이 가운데 유저들이 가장 원했던 게 능력치 3개 모두를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증가'로 도배하는 거였어. 이걸 메이플 이용자들은 '보보보'라 불러.
성능이 워낙 좋아 '꿈의 능력치'라고 부르기까지 했지. 그런데 이 능력치를 한 장비에 3개 고정할 가능성이 애초에 0%였다는 게 이번 확률 공개로 드러난 거야. 문제는 넥슨은 보보보 옵션을 한 장비에 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고지한 적이 없었어.
겜린이: 아니 그게 말이 돼? 넥슨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야?
겜덕후: 넥슨은 "게임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설정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유저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 "애초에 보보보를 얻을 확률이 불가능한 것을 알았으면 수천만원의 돈을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란 성토까지 여러 커뮤니티에 나오고 있어. 일부에서는 "넥슨이 유저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고 보고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중이야.
겜린이: 더 커질 수 있었던 피해 사례가 확률 공개로 일부 진화된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런데 넥슨 말고 다른 게임사들도 공개해야 의미가 있는 거 아냐? 사람들이 넥슨 게임만 하는 건 아니잖아.
겜덕후: 그게 맞아. 다른 대형사 엔씨소프트, 넷마블도 자사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더 확실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야.
겜린이: 그런데 이미 게임사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는데, 이용자들이 만족할까? 최악의 경우에는 조작된 확률을 공개하더라도 사람들이 알 길이 없잖아?
겜덕후: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이참에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규제안을 내놓으려 하고 있어. 게임사들의 자율 규제 움직임을 더는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지.
지난해 말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17명이 관련 개정안을 이미 냈어. 확률형 아이템 정의를 명확히 하고, 획득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야. 뒤이어 지난 1월 같은 당 유정주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내놨어.
이번 달에는 앞선 두 사람과 당적이 같은 유동수 의원이 확률 조작금지, 컴플리트 가차 금지, 이를 위반 시 3배 이내 과징금을 부과하는 더 강력한 법안까지 발의했어.
유저들이 분노해 게임사 판교 본사, 국회 앞에 항의성 '트럭 시위'를 벌이는 지경까지 왔으니, 표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이 더는 외면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거 같아.
눈치보는 게임사들
겜린이: 진작에 게임사 자체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자제하지... 이 지경까지 온 걸 보면 게임사 업보기도 하겠다.
겜덕후: 이런 말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 나름의 사업 모델이었어. 2004년 넥슨이 처음 선보인 이후로 마냥 포기하기엔 아쉬운 황금알 낳는 거위 같은 거였지.
매달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정액제 요금과 달리 유저를 끌어모으기 쉬운 것도 매력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야. 일단 접속을 무료로 가능하게 하면 게임사는 더 넓은 잠재 소비자층을 확보할 수 있어. 매출은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을 수 있으니 게임사는 정액제 때보다 더 많은 금액을 유저 한 명에게서 뽑는 게 가능하고 말야.
겜린이: 아... 그럼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면 게임사 매출에 일부 타격이 갈 수도 있겠네?
겜덕후: 게임 업계도 이를 우려하고 있어. 특히 확률형 아이템 관련 전담 인력을 두기 어려운 영세한 중·소형 게임사들이 대형 게임사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 자칫하면 게임 업계 허리 격인 업체들이 힘을 잃어, 생태계가 죽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와.
또 가뜩이나 "게임이 과도한 중독을 일으킨다"고 여기는 사회 인식이 더 악화돼, 게임 업계에 대한 대책이 규제 일변도로 갈 수 있다는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고.
확률형 아이템만이 능사가 아니다
겜린이: 그렇다고 마냥 확률형 아이템을 두기엔 유저들이 용납 못 할 거 같은데? 게임사와 이용자 모두 윈윈하는 방안은 없을까.
겜덕후: 그래서 일부 대안으로 '배틀 패스'라는 서비스 방식이 거론되고 있어. 이건 유명 총싸움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적용한 방식인데. 일정 금액을 내고 게임 진척도를 높이면 보상을 받는 방식이야.
배틀 패스 과금 유저에게 무료 때보다 좀 더 좋은 혜택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추가로 장비 업그레이드 금액을 줄여줄 수도 있고.
물론 현재 한국 게임사들의 주력 장르가 MMORPG인 것을 고려하면 배틀그라운드에서 적용된 배틀 패스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 다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으면 뽑기 실패 시 돈을 허공에 날리는 확률형 아이템보다 더 신사적인 돈벌이 방법이 될 것이라고 일부 게임사들이 얘기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