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대표적 유전자 분석기업 '23앤드미'(23andMe)가 파산했다. 23앤드미는 유전체산업 태동기인 2000년대 개인 유전자 검사 시대를 연 선구자적 기업이었지만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신사업 중단 등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23앤드미는 최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창업자인 앤 보이치츠키 CEO도 사임했다.
23앤드미는 지난 몇년간 지속적인 사업·인력 구조조정 등을 통해 사업 정상화에 나섰지만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23앤드미가 보유한 막대한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23앤드미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 인간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휴먼게놈프로젝트가 완료돼 유전체 산업이 본격 개화하기 시작한 2006년이었다.
생명과학과 금융업계에서 일하며 유전학과 맞춤형 의료에 관심을 가진 앤 보이치츠키(Anne E. Wojcicki)가 23쌍의 염색체에서 착안해 23앤드미를 설립했다. 그는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로도 알려져있다.
23앤드미는 창업 초기부터 구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23앤드미는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 유전자 분석기업을 통해 간편하고 저렴하게 유전자를 분석받아 볼 수 있는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시장을 열었다. 이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유전정보로 건강과 질병 위험을 파악해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정작 23앤드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조상찾기(Ancestry) 서비스였다. 개인의 혈통과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이 서비스는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로 주목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DTC 유전자 검사 시장은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다수의 기업이 들어와 제살깎기 경쟁을 펼쳤다. 유전자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재검사 수요가 적어 지속적인 수익창출이 어려웠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건강예측 정보는 모호했고 이에 대응할 치료법도 마땅치 않았다. 조상찾기 역시 이벤트성 서비스였다.
23앤드미 역시 유전체 데이터 기반 신약개발을 추진하는 등 신사업을 통한 성장 동력을 모색했다. 2018년에는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신약 관련 3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항암제 임상을 직업 수행하시도 했다. 2021년 나스닥 시장에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의 합병 방식으로 우회 상장해 한때 시가총액이 60억 달러(8조800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
23앤드미는 2023년 10월 해킹 공격으로 약 700만 명의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위기가 현실화됐다. 23앤미는 이 사건과 관련된 소송에서 합의금으로 30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024년에는 전 직원의 40%가량을 해고하며 유전체 신약개발 사업을 중단했다. 창업자인 앤 보이치츠키는 최근 회사 지분을 인수해 23앤드미를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
국내 유전자 분석기업 관계자는 "23앤드미는 국내 다수의 유전자 기업들이 DTC 서비스를 벤치마킹할 만큼 선구자적인 기업이었다"면서 "DTC의 한계를 절감하고 신약개발 등 새로운 도전을 한 23앤드미의 도전사는 유전체산업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