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기업들이 IPO(기업공개) 시장에서 존재감을 다시 키우고 있다. 금리인상, 엔데믹 등에 어려운 한 해를 보낸 업계는 작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상장을 미루거나, 희망 공모가 하단을 밑도는 금액으로 상장해야 했다.
이렇게 침체한 분위기는 올 하반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리인하 기대 외에도 국내 제약사들의 항암·비만치료 신약개발 소식에 잠든 바이오 투자심리가 깨어나고 있다.
26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오는 4분기 IPO를 앞둔 제약·바이오 기업은 총 4곳, 코스닥 상장심사 청구 결과를 기다리는 곳은 9곳이다. 업황 개선이 예상되며 향후 IPO 문을 두드리는 제약바이오 기업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엔데믹에 고개 숙인 제약바이오주
작년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IPO 시장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1조~2조원대 대어로 주목받던 보로노이, 바이오노트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부진하며 공모를 한 차례 미루거나, 공모가를 당초 희망하던 금액의 절반으로 낮췄다.
한국의학연구소, 퓨쳐메디신, 넥스트바이오 등 이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상장심사를 줄줄이 철회했다.
바이오 IPO 시장이 위축된 건 금리인상 외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전환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지난 5월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바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연구개발(R&D)에 주력해 왔던 제약바이오 기업들 중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 치료제는 셀트리온만이 개발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줄줄이 개발을 중단하면서 종목의 상승 모멘텀이 꺾이기 시작했다.
코스피 의약품 지수 47개 기업의 시가총액은 2021년 8월 167조원 정점을 찍은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25일 현재 101조원으로 약 40% 감소했다.
하반기 분위기 반전 기대감 높아
연초 들어 증시가 되살아났지만 2차전지에 내어준 주도주 자리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올 상반기 코스피 의약품 지수는 7.9% 내렸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차전지주 상승에 힘입어 15.2% 증가했다.
올 상반기 헬스케어 업종에서는 바이오인프라, 지아이이노베이션, 에스바이오메딕스, 큐라티스, 프로테옴텍 등 총 5개 바이오기업이 증시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곳 늘어났으나 총 공모 금액은 33% 더 적었다.
이 중 바이오인프라, 에스바이오메딕스가 공모가 최상단에 상장하는 성과를 냈으나 다른 3개 기업은 희망가보다 낮은 공모가를 확정받았다.
어둡던 분위기는 올 하반기 들어 반전하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품목허가를 획득한 유한양행의 신약 '레이저티닙(국내명 렉라자)'이 병용요법 임상3상 데이터 공개를 앞두고 있는 등 제약사들의 R&D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최근 메가 트렌드로 떠오른 비만 신약도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심을 끌어올리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건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치료제다.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던 GLP-1은 글로벌 제약사가 비만치료제로 개발하면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 한미약품, 일동제약 등 다수의 국내 제약사도 GLP-1 기반 비만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심혈관, 알츠하이머 치료제로도 개발이 이어지는 추세다. JP모건에 따르면 GLP-1 계열 의약품 시장은 2032년 710억 달러(약 9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주목해야 할 시장은 비만과 알츠하이머 신약 시장"이라며 "뿐만 아니라 항암제를 포함해 유의미한 신약 연구개발 모멘텀이 존재하는 하반기 제약바이오 투자는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똑똑' 돌아온 바이오주
올 하반기에 상장한 제약·바이오사는 인공지능(AI) 신약개발사 파로스아이바이오, 세포분석 장비업체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두 곳이다.
모두 수요예측 부진에 공모가 최하단에 상장했으나 실적 개선 기대감에 하반기 중 주가 반전에 성공했다. 21일 종가 기준 두 회사의 주식은 공모가를 각각 78%, 236%씩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 오는 4분기 코스닥 IPO를 앞둔 바이오기업은 에스엘에스바이오, 유투바이오, 큐로셀, 블루엠텍 총 4곳이다. 에스엘에스바이오, 유투바이오는 코넥스에서 이전 상장을 추진한다. 큐로셀은 상장 재도전, 블루엠텍은 의약품 유통업 최초로 상장을 노린다.
이밖에 하반기 중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한 바이오기업은 9곳이다. 오상헬스케어, 하이센스바이오, 이엔셀, 노브메타파마, 쓰리디메디비젼, 옵토레인, 씨어스테크놀로지, 아이엠비디엑스, 코루파마 등이다.
이번에 상장을 준비하는 한 바이오텍 관계자는 "지난 상반기에는 바이오업계 매출이 줄면서 펀딩도 덩달아 주춤했다"며 "하반기 들어 이러한 부분이 회복하며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하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 신약 개발 소식, 바이오시밀러 시장 확대 등으로 올 4분기에서 내년 1분기가 제약바이오 호황의 시작이라고 판단한다"며 "기술력이 있고 라이선스 아웃(기술 이전) 이력이 있으며 글로벌 바이오트렌드에 부합하는 바이오텍들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