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비만치료제와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를 내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드-1) 수용체 약물에 대한 자살 부작용 여부를 조사중인 가운데 GLP-1이 다른 약물보다 자살충동 위험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GLP-1은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음식물이 장내 오래 머물게 함으로써 포만감을 유지시키고 식욕을 억제해 비만치료제로도 허가를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약물이 노보노디스크의 1일 1회 주사하는 삭센다(성분명: 세마글루티드)와 1주에 1회 주사하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 당뇨병 치료제명: 오젬픽), 릴리의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티드) 등이 있습니다.
지난해 유럽에서 세마글루티드의 자살 충동에 대한 보고가 발표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올해 초부터 자체 조사에 돌입했는데요. 최근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 의과대학의 생물의학 정보학 교수인 룽 쉬(Rong Xu) 박사와 국립약물남용연구소 소장인 노라 볼코우(Nora Volkow) 박사가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마글루티드 약물이 다른 약물 대비 자살 충동 위험의 연관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연구는 비만 환자 24만명 이상과 제2형 당뇨병 환자 15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세마글루티드와 부프로피온, 날트렉손, 올리스타트, 토피라메이트, 펜터민 등 약물 반응을 비교했습니다. 세마글루티드는 복용 시작 후 6개월이 지났을 때 비교 약물 대비 최초 자살 충동의 위험이 73% 낮았고 재발성 자살충동은 56%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2형 당뇨병 환자군에서도 세마글루티드는 비교 약물인 인슐린, 메트포르민, DPP-4억제제, SGLT-2억제제 등 다른 당뇨병 치료제 대비 최초 자살충동 위험과 재발성 자살충동 위험이 각각 65%와 49% 낮은 것으로 확인됐고요.
현재 FDA 부작용보고시스템(FAERS) 데이터베이스에는 세마글루티드 사용자 사이에서 약 2만3000개에 달하는 다양한 이상반응이 보고돼있는데요. 가장 흔한 이상반응은 1만개가 넘게 보고된 위장 장애였고 자살충동 사례는 144건이 보고됐습니다. 이번 연구결과가 FDA의 FAERS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FDA가 GLP-1 약물과 자살충동의 인과 관계를 확인,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GLP-1 계열 중 가장 먼저 개발된 삭센다는 처방 정보에 환자의 우울증이나 자살 생각 또는 행동을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권고사항이 포함돼 있는데요. 권고사항에는 삭센다 임상시험에서 이 약을 복용하는 성인 3384명 중 9명(0.3%)이 자살 충동을 느꼈고 위약을 복용한 성인 1941명 중 2명(0.1%)이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삭센다와 자살충동의 인과관계를 규명짓기 어렵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밖에 GLP-1 수용체의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변비 등 위장 문제가 대부분이지만 위 마비와 같은 더 심각한 잠재적 부작용에 대한 보고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불티나게 처방되고 있는 오젬픽과 위고비, 마운자로 등도 FDA와 유럽의약품청(EMA) 조사대상에 올라있습니다. 앞서 지난해 7월 EMA도 GLP-1 계열 약물에 대해 자해와 자살충동 가능성이 있는 약 150건의 이상반응이 보고돼 검토를 진행하고 있죠.
이번 연구에서 세마글루티드와 자살충동의 연관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이는 FDA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닌 만큼 아직까지는 사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볼코프 박사는 "약물의 작용 방식과 무관하게 갑작스런 체중 감소의 영향이 일부 사람들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GLP-1 수용체가 뇌의 도파민 보상 체계에서 발현되면서 세마글루타이드가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