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호남에서 자본금 1억원의 회사로 출발해 연간 10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그룹이 됐습니다. 20대 후반이었던 창업주는 이제 65세가 됐습니다. 창업주는 예순에 접어들면서부터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고, 2세 경영이 한창입니다. 아파트 브랜드 '호반써밋', '베르디움'으로 많이 알려진 호반그룹의 이야기입니다.
호반의 성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공공택지 개발입니다. 그리고 인수합병(M&A) 이슈도 함께였고요. 금융을 포함해 다양한 업종의 기업 M&A 관련해서 최근 십여년간 호반의 이름은 번번이 언급됐습니다.
김상열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빠지고 전문경영인 체제 속에 2세들이 경영에 뛰어든 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호반그룹이 쌓아둔 유동성 자산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때가 다가왔다는 관측도 그래서 나옵니다. 최근 호반의 한진칼 지분 인수와 관련해 단순 투자 외에 다른 목적이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유동성 자산 10조 그룹, 한진칼 투자 확대
지난해 말 기준 호반그룹이 보유한 유동성 자산은 10조원입니다. 이 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4741억원입니다. 이 같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호반그룹은 지난 2022년부터 한진칼 1345만4674주를 사들였습니다. 여기에 쓴 돈은 8782억원입니다.▷관련기사: 한진칼에 8800억 쏟은 호반, 판 더 키울까(7월14일)
구체적으로 호반건설이 5352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 11.5%를 인수했고 호반호텔앤리조트가 한진칼 지분 8.34% 인수에 3229억원을 투입했습니다. 호반산업과 호반도 각각 146억원, 55억원을 들여 0.17%, 0.15%의 지분을 확보했고요.
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호반건설이 투자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호반건설과 그 계열사인 호반호텔앤리조트가 8581억원을 썼고 두 회사의 한진칼 지분은 합쳐서 19.84%입니다. 한진칼 오너가의 지분은 13.5%,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지분까지 더하면 20.56%입니다.
호반그룹은 한진칼 지분을 인수한 이유를 "단순 추가 취득"이라고 공시했습니다. 투자 목적이라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호반건설은 지난해 영업 실적이 나빠졌으나 보유한 한진칼 주가가 오르며 당기순이익은 크게 늘었습니다. 당시 연결재무제표 기준 한진칼 지분을 18.78% 보유했고 이에 대한 장부가는 1조5544억원이었습니다. 1년 전에는 9008억원이었으나 72.6% 급증한 겁니다.
굵직한 인수합병마다 이름 올렸던 그 기업
호반건설은 과거에도 다른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전례가 있습니다. 2014년 11월 아시아나항공의 모기업이었던 금호산업의 지분 6.16%를 254억원에 사들였었습니다. 당시 금호산업 지분 5.35%를 가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을 제치고 최대 주주에 올랐고요. 그러나 2015년 1월 보유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이를 4.95%까지 낮췄습니다.▷관련기사: '먹고 빠지나' 호반건설, 금호산업 지분 1.2% 매도(2015년 1월23일)
당시 금호산업은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며 한국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경영권을 가지고 매각에 나섰던 상황이었고요. 이후 호반건설은 금호산업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서 금호산업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했습니다. 시장에서는 호반건설의 최근 한진칼 지분 매입과 이를 빗대곤 합니다. 그러나 당시 최종 인수까지 가진 않았죠.
호반그룹이 M&A 시장에 다시 거론된 건 대우건설이 매물로 나온 2017년이었습니다. 당시 대우건설의 경영권을 쥐고 있던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 공고를 냈고 이번에도 호반건설이 인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호반건설은 2018년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에 홀로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장에서 대규모 해외 손실을 파악했다면 인수를 포기했습니다. 당시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장 손실 규모는 3000억원대로 알려졌죠.▷관련기사: 호반건설, 대우건설 포기…"심각한 고민끝 결정"(2018년 2월8일)
주택으로 벌고 M&A로 불린 덩치
호반그룹은 주로 호반건설을 내세워 인수합병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실제로 덩치가 큰 기업을 품은 건 호반산업이었습니다. 2010년에 설립된 호반산업은 베르디움건설을 모태로 합니다. 2017년 울트라건설과 그 계열사인 유원TBM(현 호반 TBM) 등을 품으면서 주택 외에 토목 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호반산업은 현재 김상열 창업주의 삼 남매 중 막내아들인 김민성 호반그룹 부사장이 41.99%의 지분을 보유하고 2019년부터 사내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회사입니다. 2021년 대한전선 최대주주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와 대한전선 경영권을 포함한 보유 지분 전체를 2518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하며 덩치를 키웠습니다.
▷관련기사: [대한전선, 호반 품에]②사업다각화·승계 한방에(2021년 4월1일)[대한전선, 호반 품에]①구조조정 12년만에 새 주인(2021년 3월30일)
호반산업의 대한전선 인수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대한전선이 호반산업에 넘어가기 전 2020년 연간 매출(연결 기준)이 1조5968억원에서 그러나 지난해 대한전선의 매출은 3조6360억원, 영업이익은 1286억원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호반산업의 매출은 1조1008억원에서 4조3712억원까지 늘었습니다. 영업이익은 2335억원에서 2119억원으로 낮아지긴 했으나 고수익 사업이던 분양 사업이 부동산 경기, 정부 정책 변화 등으로 축소한 걸 대한전선이 메운 셈이죠.
호반산업은 이에 맞춰 HB호반이라는 지주사 출범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남은 분양 사업장을 우선적으로 정리한다는 계획입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분양 사업장의 입주까지 고려한다면 호반산업의 지주사 설립은 한참 후에나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호반건설의 다음 성장 공식은
호반산업의 매출이 급성장하는 사이 호반건설은 역성장과 성장을 반복했습니다. 호반산업과 달리 주택 사업을 주력으로 해 부동산 경기에 따라 실적 변동이 컸습니다. 호반건설의 지난해 매출은 1조2326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3706)억원과 비교했을 때 48.0% 감소했고요. 영업이익도 2716억원에서 1361억원으로 절반이 빠졌습니다.▷관련기사: 헌 집으로 눈 돌린 호반건설, 수익성 지켜낼까(5월4일)
호반건설의 최대주주는 삼 남매 중 첫째인 김대헌 호반그룹 사장입니다. 54.73%의 지분을 보유했습니다. 호반건설의 사내이사로 2018년 12월 등기돼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요.
호반건설도 호반산업처럼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같은 해법을 내놓을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당장 호반건설은 수도권 내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늘리고 있습니다. 올해 안산 고잔연립6구역과 면목역6의3·4·5구역, 군포 금정3구역 등의 시공권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간 택지 개발도 조금씩 곁들이고요.
다만 막대한 분양 수익을 챙길 여지가 있는 택지 개발과 달리 재건축·재개발은 결국 도급사업입니다. 업계에서는 개발 사업의 이익률은 10% 이상을 웃돌 것으로 보지만 주택 도급 사업의 매출이익률은 통상 5% 내외로 봅니다. 호반건설이 이런 시장에서 주택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 부호가 붙습니다. 대단한 자금력에 비하면 정비사업 수주의 관건인 브랜드 위상도 떨어지죠.
호반건설은 여전히 그룹에서 현금을 포함해 가장 풍부한 유동성 자산을 갖췄습니다. 호반건설의 지난해 말 별도 기준 유동성 자산은 2조4861억원, 이 중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113억원입니다. 호반산업의 유동성 자산이 1조1099억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839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풍족합니다.
호반건설의 한진칼 지분 인수가 단순 투자 목적이라도 이후 수익이 난다면 넉넉한 재원을 어디에 쓸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호반산업처럼 다른 업종으로 뻗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종합건설사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