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책임, 길을 묻다..좋은 일자리에 기여하라
저출산·인권·취약계층 지원하는 직장만들기 '주목'
윤리경영, 그 자체로 좋은 일자리..사회공헌은 다음 단계
창업주 일가의 선행과 미담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오뚜기. 이 회사는 식품업계 10대기업 가운데 비정규직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 3월말 기준 비정규직 인원은 36명, 전체직원(3063명) 가운데 1% 수준이다.
2012년부터 최근 5년간 비정규직은 제로(0)였다. 오뚜기에 따르면 작년말부터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을 파트타이머(단시간 근로자) 등으로 일부 고용하느라 '제로' 기록이 깨졌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비율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오뚜기는 재무 실적도 눈에 띄게 좋다. 불황으로 인한 소비부진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연결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다. 매출은 최근 12년간 매년 증가세다.
한눈 팔지 않고 주력인 면제품을 비롯해 식품사업에 집중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시장점유율을 지킨 것이 컸다. 여기에 직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 노력 역시 실적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2000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함영준 현 오뚜기 회장은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안정적 근로환경 조성을 강조해왔다.
오뚜기에는 노동계 최대 관심사로 꼽히는 비정규직 문제가 먼 얘기다. 이러다 보니 근로자 입장에선 고용불안이 적다. 당연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회사와 근로자 간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 기업 윤리경영, 그 자체로 좋은 일자리
흔히 '기업의 #[사회적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말할 때 기부와 같이 외부에 보여지는 선한 활동이 많이 언급된다. 복잡 다단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업만큼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한 적임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뚜기 사례처럼 기업이 기본 덕목인 윤리경영만 잘해도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현안의 실타래를 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 구성원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노력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은 아직 국내서 많이 알려진 개념은 아니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이와 관련한 국제표준인 'ISO 26000'를 지난 2010년에 발표한 바 있다. 국제표준을 통해 기업들에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의 '윤리적 바이블'이라 할 국제표준에는 크게 조직 거버넌스와 인권·노동·환경·공정운영·소비자 이슈·지역사회 참여와 발전 등 7가지 핵심 분야가 포함돼 있다. 회사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때 이러한 요소를 감안하라고 지침을 준 것이다.
실제로 오뚜기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이 이 가이드라인 관점에서 좋은일자리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자선이나 봉사 등 외형적인 활동을 넘어 사업자체를 사회적책임에 맞는 구조로 뜯어 고쳐 인권이나 노동 관행 개선에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국가경제를 이끄는 기업이 사회현안을 직접 해결하고 나선 셈이다.
◇ 어린이집·육아휴직 장려→저출산 해결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주요 기업들은 회사안에 대규모 어린이집을 짓고 임직원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등 가족친화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다.
저출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옥내에 어린이집을 만들고 근로자인 부모와 아이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혀 준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기업경쟁력 향상 및 저출산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기업의 수평적인 근무환경 조성이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단초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주요 인터넷 기업들은 사내 직급을 폐지하고 호칭을 'OO님' 혹은 영어 이름으로 대신 부르고 있다.
경력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자율과 창의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평적인 사내문화가 잘 발달하면 직장 상사로부터의 폭언이나 차별, 성희롱 같은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장애인 등 취업이 어려운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도 CSR 관점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CSR과 좋은 일자리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보고 있다. 기업이 인권이나 노동환경 개선 같은 사회적책임을 다한다면 자연스럽게 좋은일자리가 생겨난다는 논리다.
아울러 이 같은 활동은 기업이 자선단체에 수백억원씩 기부금을 내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 보고 있다. 만약 기업이 외부 기부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도 정작 구성원인 직원들을 홀대하거나 구조조정을 통해 몰아낸다면 CSR 관점에서 옳지 않은 행위다.
CSR을 주창한 아키 캐롤 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4단계(경제적·법률적·윤리적·자선적 책임)로 구분하면서 하위단계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윤리적책임이 자선적책임에 비해 우선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업이 활발하게 자선활동을 한다 해도 그 기업이 불법을 저지르면 CSR 활동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경제적·법적 책임이 기업이 의무적으로 지켜야할 단계라면 윤리적·자선적 책임은 CSR이 추구하는 상위 단계"라며 "기업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