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자금 끌어들여 도시인프라 구축 앞장
진출국과 공생 전략.."수주·공사가 곧 CSV"
[베트남 하노이 = 윤도진 기자] 오전 11시,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르기 시작한 하노이 쑤언 투이(Xuan Thuy) 거리는 오토바이 행렬로 가득했다. 워낙 혼잡이 심해 우리나라 교민 같은 외국인 거주자들은 자가용 운전 조차 엄두를 못내는 하노이 도심의 진풍경이다.
하노이 사범대, 베트남 상업대 등 대학가가 몰려 있어 서울로 치면 신촌과 비슷한 이 길 한복판에는 4개 차로 너비 공간에 하얀 콘크리트 교각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2년 후면 경전철이 달릴 구간이다. 바로 한국 건설사들이 베트남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현장이다.
"경전철이 놓이면 베트남 특유의 오토바이 러시 장관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시범사업 격인 3호선 지상공사를 벌이고 있는 대림산업의 최성화 하노이 지사장은 "매캐한 시내 매연도 줄고 교통도 원활해지면 환경과 삶의 질 면에서도 하노이가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韓 건설이 이끄는 하노이 '교통혁명'
▲ 베트남 하노이 쑤언 투이에 위치한 대림산업의 하노이 경전철 3호선 현장/윤도진 기자 spoon504@ |
이달 초 찾아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도시 전체가 현대적 기능을 갖춰가고 있는 변화의 현장이었다. 이 나라 국부 호치민이 일군 특유의 자생적 사회주의는 주변 태국이나 필리핀 등과 비교해 이 나라의 물질적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한 게 사실이다. 작년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500달러에도 못 미친 수준이다.
더뎠던 사회 발전은 한국 기업들의 건설사업과 함께 속도를 내고 있었다. 교통시설, 주거환경, 에너지 플랜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베트남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일 사업들이 국내 건설사들의 진출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 건설사들의 기업활동이 베트남 시민들이 도시 환경 개선과 생활인프라 자산 구축이라는 결실로 이어지는 'CSV(사회 가치 창출) 활동'인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3년 전부터 베트남 양대 도시인 하노이와 호치민에 진행되고 있는 경전철 사업이다. 대림산업은 지난 2014년 하노이 도시철도관리위원회와 8400만달러 규모의 경전철 3호선 지상공사 계약을 맺었다. 약 8.5㎞ 구간에 철로를 놓는 이 사업은 하노이 시내 8개 노선중 첫 국제입찰로 발주한 시범사업이다.
대림산업은 이 사업에 프랑스개발은행(AFD)과 유럽투자은행(EIB)을 끌어들였다. 유럽의 대표적인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이다. 건설사는 자금 리스크를 덜어내서 좋고, 베트남 입장에서는 스스로 끌어오기 힘든 저리의 원조자금을 받을 수 있어 이익이 되는 방식이다. 사업 실적을 가진 건설사가 대신 신용을 제공했기에 가능한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 좋은' 사업 구조다.
이 구간 내에 8개의 지상역사를 짓는 것도 한국 기업인 포스코건설이다. 역사는 각각 길이 108m, 폭 24m 규모로 세워진다. 이 구간에 이어 하노이 기차역까지 연결되는 지하 구간 공사는 현대건설이 참여하고 있다. 총연장 288.5km, 8개 라인으로 구성된 하노이 경전철 공사는 이렇게 한국 건설사들이 ODA 자금을 끌어들여 진행중이다.
◇ 이유 있는 베트남 '건설 한류'
한국은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해 이 나라와는 역사적 악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건설사들은 현지에서 '좋은 기업'으로 꼽힌다. 대림산업 최 지사장은 "하노이가 제대로 된 도시 모습을 갖추는 데 우리 기업들의 사업 노하우와 자금 조달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라며 "실용적 국민성을 가진 베트남 사람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도시 발전을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1986년 도이모이(Doi Moi, 개방정책) 실시 이후 교통·에너지·지역개발 등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을 위해 지속적 투자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노이나 호치민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업무용 빌딩, 주거용 아파트 등 건물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발전시설에 대한 수요도 풍부하다.
한국 건설사들은 전 세계국 중 7번째로 베트남에서 많은 공사를 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현대건설이 1966년 1월 깜라인만 등 메콩강 하류 준설 공사로 베트남에 첫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51년간 1153건, 금액으로는 341억9929만달러 규모의 사업을 수행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다소 침체됐던 베트남 건설시장은 현지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면서 다시 사업이 늘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 베트남 정부는 도로·철도·항공 등 교통 인프라 개발에 500억달러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게 문제다. 정부가 들일 수 있는 예산은 전체 금액의 30~40%에 그친다. 사업을 직접 시행할 현지 건설사들의 기술력도 부족하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베트남이 계획한 교통 인프라 사업의 절반 가량은 ODA 원조자금을 활용해야 가능한 상황"이라며 "토목·건축·플랜트 등 종합적 사업역량을 갖춘 국내 건설사들이 수출입은행의 EDCF(대외협력기금) 같은 공공 성격의 개발자금을 활용하는 방식이 베트남에서 환영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 '신도시' 전수해 '도시재생' 숙원 해결
▲ 대우건설이 하노이 도심에서 벌이고 있는 '스타레이크 시티' 개발 사업지 전경. |
압축적 고성장 개발시대를 거친 한국 건설사들의 사업역량은 베트남의 낙후한 도시 환경을 빠르게 개선하는 데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하노이 한 켠을 차지하는 서호(호떠이) 옆에도 변화의 현장이 있다. 수변 경관을 갖춘 새로운 시가지를 건설하는 '도시 내 신도시' 사업이다. 대우건설이 벌이고 있는 '스타레이크 신도시(떠이호떠이, Tay Ho Tay)'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첫 기획부터 따지면 20여년을 넘긴 '묵은지' 프로젝트다. 하노이 시청 북서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여의도 면적 3분의 2 크기인 186만3000㎡ 규모로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부지 내에는 상업 및 업무용지, 학교 및 정부기관 용지, 주거용 빌라, 아파트, 주상복합이 순차적으로 개발된다.
국내 최초로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두 총괄하는 신도시 디벨로퍼 사업의 해외 진출 첫 사례다. 총 사업비는 25억2800만달러, 오는 2019년까지 마무리될 1단계 사업비만 약 12억달러에 달한다.
이 현장을 총괄하는 김성욱 대우건설 베트남DECV 스타레이크 현장소장은 "대우그룹 시절부터 베트남에서 벌인 다양한 투자활동을 수주 기반으로 삼았던 사업이 이제 막 결실을 맺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신도시 건설 경험을 수출하는 동시에 낙후한 도심을 되살리는 현지 숙원사업을 이루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건설사들은 사업과 동시에 현지인들과 동반성장 차원의 사회공헌(CSR)활동도 신경쓰고 있다. 대우건설의 경우 베트남 국립토목공대와 인턴십 협약을 맺어 현지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우수한 현지 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래성장동력을 육성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 소장은 "베트남 직원들이나 협력사였던 현지 건설기업들의 현장 기술, 수행능력 습득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며 "사업적으로는 베트남에서 할 일이 적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도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성장한다는 보람이 이에 못지않게 크다"고 말했다.
▲ 대우건설이 '스타레이크 시티' 내에 분양한 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