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책임, 길을 묻다…인프라를 바꾸자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언
"SRI·임팩트금융, 유용한 사회적기업 유인책"
"사회적 책임 정보 공개해야 투자자도 적극적"
"국내 은행 중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곳은 수치만 보면 농협은행입니다. 조직 규모가 큰 만큼 인력도 예산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질적으로 따지면 제대로 하는 은행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사실이 공개되지 않으면 외부에선 잘 모르죠."
안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 '정보 공개'를 강조했다.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외대에서 만난 안수현 교수는 사회책임투자(SRI, 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 임팩트금융 등 다양한 제도를 소개했다. 아울러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에 힘을 실어주려면 관련된 양적, 질적 정보가 충분히 공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착한 기업 돕는 착한 투자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불우이웃 돕기나 환경 보호 활동을 떠올린다. 안 교수는 "사회공헌활동은 사회적 책임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면서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을 활용해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기관투자가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해 투자하는 SRI다. 국내에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2006년 선보인 '장하성 펀드'가 시초다. 이 펀드는 출범 초반에 돌풍을 일으켰으나 낮은 수익을 내면서 흐지부지됐다. 최근엔 국민연금이 운용금액의 일부로 SRI를 실시하고 있다.
SRI와 유사한 임팩트금융도 있다. 임팩트금융은 기관투자가뿐만 아니라 일반투자자까지 참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달 소셜벤처, 지역 재생, 사회적 프로젝트, 지역 임팩트금융기관 육성 등에 투자하는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화두로 떠올랐다.
국가사업 위탁업체가 사업목표를 달성하면 투자자에게 약정금리를 주는 사회적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도 임팩트금융의 일종이다. 영국 피터버러 교도소가 재소자의 재범비율 하락 시 수익을 주는 방식으로 처음 시작했다. 국내에선 경기도 기초생활 수급자의 구직사업인 '해봄 프로젝트' 참여업체가 SIB를 발행했다. 안수현 교수는 "성과에 대한 유인이 큰 민간에 국가사업을 맡겨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으로 공익을 중점적으로 추구할 수도 있다. 국내에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적기업육성법을 통해 사회적기업을 관리한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려면 이 법에 따라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획득하면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인증요건에 맞게 체계적으로 운영한다는 평가다. 안 교수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은 대만에서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할 정도로 잘 구비돼 있다"고 말했다.
◇ 정보 공개 뒷받침돼야
다양한 사회적 책임 관련 제도와 법을 갖췄지만, 이를 활용한 결과가 썩 좋진 않다. SRI 투자만 해도 수익률이 낮아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 교수는 "기업의 ESG 개선 여부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제도를 이용하니 결과가 나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 책임 정보 공시는 국내에선 의무가 아니다. 유럽이 근로자 500명 이상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비재무적 정보를 공시하도록 한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 보험 등 금융권만 협회 중심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 외엔 일부 대기업이 홍보 차원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정도다.
공시한 회사들도 활동내역, 인력, 예산 등 단순 정보만 올리는 식이다. 그는 "보험사는 통계만 보면 고령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용 상품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손해를 입을 까봐 적극적으로 팔지 않는다"면서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시 인프라 자체도 미비하다. 한국거래소에 환경 정보를 공시할 수 있지만 사회와 지배구조 관련 시스템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 수 없으니 국민연금 이외의 기관투자자들은 SRI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 "정부-민간 업무 분담해야"
안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번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해 "기업의 ESG 개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주요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으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 기관투자가가 이해관계로 엮인 회사나 그룹 계열사를 무조건 밀어주는 일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무시하는 회사는 장기적으로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된다. 다만 "과도한 배당, 정보를 요구하는 악성 투자자를 저지할 장치를 보완해야 안정적으로 제도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교수는 "정부는 작아지는데 사회적 난제는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정부가 할 일을 민간과 나누는 것이 곧 사회적 책임 활동이며, 현실적으로 좋은 툴(Tool)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 '정보 공개'를 강조했다.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외대에서 만난 안수현 교수는 사회책임투자(SRI, 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 임팩트금융 등 다양한 제도를 소개했다. 아울러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에 힘을 실어주려면 관련된 양적, 질적 정보가 충분히 공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안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 : 이명근 기자/qwe123@ |
◇ 착한 기업 돕는 착한 투자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불우이웃 돕기나 환경 보호 활동을 떠올린다. 안 교수는 "사회공헌활동은 사회적 책임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면서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을 활용해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기관투자가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해 투자하는 SRI다. 국내에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2006년 선보인 '장하성 펀드'가 시초다. 이 펀드는 출범 초반에 돌풍을 일으켰으나 낮은 수익을 내면서 흐지부지됐다. 최근엔 국민연금이 운용금액의 일부로 SRI를 실시하고 있다.
SRI와 유사한 임팩트금융도 있다. 임팩트금융은 기관투자가뿐만 아니라 일반투자자까지 참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달 소셜벤처, 지역 재생, 사회적 프로젝트, 지역 임팩트금융기관 육성 등에 투자하는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화두로 떠올랐다.
국가사업 위탁업체가 사업목표를 달성하면 투자자에게 약정금리를 주는 사회적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도 임팩트금융의 일종이다. 영국 피터버러 교도소가 재소자의 재범비율 하락 시 수익을 주는 방식으로 처음 시작했다. 국내에선 경기도 기초생활 수급자의 구직사업인 '해봄 프로젝트' 참여업체가 SIB를 발행했다. 안수현 교수는 "성과에 대한 유인이 큰 민간에 국가사업을 맡겨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으로 공익을 중점적으로 추구할 수도 있다. 국내에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적기업육성법을 통해 사회적기업을 관리한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려면 이 법에 따라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획득하면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인증요건에 맞게 체계적으로 운영한다는 평가다. 안 교수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은 대만에서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할 정도로 잘 구비돼 있다"고 말했다.
◇ 정보 공개 뒷받침돼야
다양한 사회적 책임 관련 제도와 법을 갖췄지만, 이를 활용한 결과가 썩 좋진 않다. SRI 투자만 해도 수익률이 낮아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 교수는 "기업의 ESG 개선 여부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제도를 이용하니 결과가 나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 책임 정보 공시는 국내에선 의무가 아니다. 유럽이 근로자 500명 이상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비재무적 정보를 공시하도록 한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 보험 등 금융권만 협회 중심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 외엔 일부 대기업이 홍보 차원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정도다.
공시한 회사들도 활동내역, 인력, 예산 등 단순 정보만 올리는 식이다. 그는 "보험사는 통계만 보면 고령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용 상품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손해를 입을 까봐 적극적으로 팔지 않는다"면서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시 인프라 자체도 미비하다. 한국거래소에 환경 정보를 공시할 수 있지만 사회와 지배구조 관련 시스템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 수 없으니 국민연금 이외의 기관투자자들은 SRI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 "정부-민간 업무 분담해야"
안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번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해 "기업의 ESG 개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주요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으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 기관투자가가 이해관계로 엮인 회사나 그룹 계열사를 무조건 밀어주는 일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무시하는 회사는 장기적으로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된다. 다만 "과도한 배당, 정보를 요구하는 악성 투자자를 저지할 장치를 보완해야 안정적으로 제도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교수는 "정부는 작아지는데 사회적 난제는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정부가 할 일을 민간과 나누는 것이 곧 사회적 책임 활동이며, 현실적으로 좋은 툴(Tool)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