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골프는 잔인한 유혹이다. 가슴 터질 듯한 푸른 하늘. 핏빛 단풍. 만추(晩秋) 필드가 나를 부른다. ‘빚을 내서라도 나가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어찌 뿌리치랴. 가슴 뛰는 그 유혹을.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간 그곳에서 맞보는 좌절과 아쉬움. 겪어보지 않았을 리 없다. 한해살이를 해 본 골퍼라면. ‘늦가을 골프 다섯 타 줄이는 법’을 김용준 골프 전문위원이 정리한다. 순수 독학 된장 골퍼 주제에 프로까지 된 김 위원 아니던가?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말하는 비결을 들어보자. 간단하지만 놓치기 쉬운 그 비결을. [편집자]
에이, 설마? 볼 반 개가 말을 하겠느냐고? 말을 한다. 샷을 할 때 볼 위치 말이다.
공인 골프볼 크기는 4.593cm 이상이다. 볼 크기가 이보다 작으면 비공인구다. 반칙이니 진정한 골퍼가 되려면 쓰면 안 된다. 공인구와 비공인구 얘기는 머지않아 할 날이 있을 것이다.
볼 반 개라면 2.29cm남짓이다. 1인치가 채 안 되는 셈이다. 늦가을 골프에서는 이 볼 반 개가 말을 한다. 무슨 말인지 다음 얘기를 들어보라.
늦가을 잔디는 제철 잔디와는 다르다. 생기를 잃기 마련이다. 푸석푸석 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꼿꼿하지 않다.
그 위에 놓인 볼은 어떤 상태일까? 그렇다. 잔디 위에 있다고 해도 잔디가 있으나마나 할 때가 많은 것이다. 사실상 흙 위에 놓여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이런 계절에는 잔디 상태가 좋을 때와는 샷도 달라야 한다. 흠. 샷이 달라야 한다고 말하면 스윙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오해할 수 있겠다. 그렇지는 않다. 스윙은 그대로 한다. 다만 볼 위치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언 샷이 특히 그렇다. 늦가을 아이언 샷은 여차하면 두껍게 맞는다. 뒤땅이 나기 쉽다는 얘기다. 잔디가 빳빳할 때는 살짝 두꺼워도 그럭저럭 맞는다. 볼 뒤 잔디를 먼저 쳤어도 클럽이 잘 미끄러지면서 볼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늦가을 힘없는 잔디위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볼 바로 뒤는 흙이다. 잔디가 없으니까. 이럴 때 클럽 헤드가 흙을 먼저 치면? 마찰이 잔디보다는 훨씬 크다. 헤드 스피드는 급격히 줄어들고 맥 없이 볼을 때리기 십상이다. ‘철퍼덕’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기가 막히게 볼부터 찍어 치는 재주가 있는 골퍼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디봇을 크게 내지 않고 깔끔하게 쓸어치는 골퍼라면 당황할 수 있다.
그러니 애초에 볼을 조금 더 오른쪽에 두고 샷을 하는 것이 비결이다.
어느 정도 오른쪽에 둬야 하느냐고?
중급자라면 볼 반 개 정도 오른쪽에 두면 적당하다. 7번 아이언 기준으로 보통 때 몸 가운데 두고 친다고? 그렇다면 늦가을에는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반 개만 옮기라는 얘기다.
초급자라면? 볼 한 개 정도 오른쪽으로 옮기기를 권한다.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냐고? 그렇다. 그래서 초급자인 것이다. 볼부터 깔끔하게 치기 시작하면 이미 초급자가 아니니까.
상급자라도 반의 반 개(1cm 남짓) 정도는 오른쪽으로 옮기는 것이 지혜롭다. 나도 늦가을엔 그렇게 한다.
하이브리드나 우드도 비슷하다. 아이언보다는 덜 옮겨도 되지만. 평소보다 약간 더 우측에 두는 것이 좋다.
참. 잔디가 좋을 때 볼 위치를 기준으로 더 오른쪽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볼 라이(볼이 놓인 상황)에 관계없이 무턱대고 몸 가운데서 반 개 오른쪽에 두고선 나를 원망하면 안 된다. 해 보고 효과가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기 바란다. 효과가 없다면? 그럴 리 없다. 내가 보증한다.
김용준 골프전문위원(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 겸 KPGA 경기위원 &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