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11년 만에 순수 민간 출신의 회장을 맞이하게 됐다.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은행연합회장으로 사실상 내정되면서 은행연합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하 전 행장은 옛 한미은행 시절부터 최근까지 14년간 은행장을 해 온 최장수 CEO이다. 순수 민간출신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외국계 은행 출신의 회장을 맞는 것은 처음이어서 은행권과 은행연합회 안팎의 기대도 남다르다.
은행권 한 고위관계자는 "국내 은행 출신들과는 아무래도 사고가 좀 다르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외국계 경험이 연합회나 은행권에 활력을 넣어줄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평했다.
하 전 행장은 민간 출신이기는 하지만 사실 정치권과도 연이 닿아있다는 게 정설이다. 오랜 은행장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당국 등 관료와의 관계도 돈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점들이 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은행연합회의 성격상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관계는 관계이고, 글로벌 금융회사라 불리는 씨티은행에서의 오랜 CEO 경험도 그렇고 하 전 행장을 뼛속까지 시장주의자라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일례로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온 하 전 행장의 모습을 돌이켜보자. 지난 2012년 한국씨티은행이 미국 본사에 거액의 경영자문료를 보낸 것과 관련해 먹튀 행태라고 비판하는 이상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거기에 맞서 하 전 행장은 꿋꿋하게 할 말을 끝까지 다 했다. 중간중간 이 의원의 호통과 추궁, 비아냥 등이 있었지만 하 전 행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 해명을 끝마쳤다. 비아냥이었지만 마지막엔 "어휴 훌륭해요"라는 칭찬도 들을 정도였다.
물론 이것이 시장주의적인 사고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하 전 행장이 잘했다고 꺼낸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국내 은행 출신의 CEO였다면 높은 양반들(?) 앞에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도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낸 많은 국내 금융사 CEO들에게선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오랜 외국계 경험에서 국내 당국자 혹은 정치권의 눈치를 덜 봐 왔다는 것인데 이런 하 전 행장이 은행연합회에선 어떤 역할과 포지션을 가져갈지 궁금한 부분이다.
사실 은행연합회는 이익단체라고는 하지만 은행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공공성을 띄는 측면이 강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금융권의 여러 현안에 금융당국에서 개입하는 사례들이 잦아지고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적절한 개입이라고도 보지만 또 한편에선 반시장적이라거나 관치라는 등의 비판적인 시각도 분명히 있다. 이런 시장 논리에 반할 수도 있는 당국의 개입에 앞으로 연합회가 어떤 식으로 대응해 나갈지 주목된다.
그런 측면에서 은행권에선 새 은행연합회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하 전 행장은 오는 24일 이사회에서 회장 후보로 추천되고 곧이어 열리는 총회 절차를 통해 최종 선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