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스코어 0 대 1'
1승은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에게 먼저 돌아갔다. 처음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승기를 잡은 듯했으나,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반전의 기회를 잘 살려 결국 승리했다.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 설립에 관한 얘기다. 금융위원회는 신용정보의 공공성과 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을 연합회 외부에 별도로 신설할 계획이었다. 연합회는 정부의 정보통제 가능성 때문에 연합회 내부에 두는 방안을 주장했다.
금융위와 연합회가 이를 두고 논쟁을 벌인 데는 법 해석을 달리했기 때문. 지난 2월 국회 정무위는 신용정보법을 개정하면서 신용정보 집중기관 신설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부대 의견에 '신용정보집중기관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구성·운영한다'는 의견을 달았다.
이에 양측이 별도 신설 방안과 내부 조직 운영으로 상반된 해석을 내놓으며 '보이지 않는 논쟁(?)'을 벌여왔다.
임종룡 위원장은 어제(17일) 오전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을 은행연합회 내부 기구로 반드시 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업무보고 과정에선 계속해서 해석에 관한 논란이 있었고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결국, 오후 늦게 정무위는 "애초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가결할 때 연합회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부대 의견을 여야합의로 달았고, 그 취지는 별도 신설이 안 된다는 의미"라고 못 박았다. 임 위원장도 "부대 의견 취지를 고려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국회가 은행연합회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사실상 외부 신설이 어렵게 됐다.
하영구 회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첫 성과를 올린 셈이기도 하다. 연합회는 그동안 정부의 추진방안을 필사적으로 막아 왔다.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업무가 공적 기관 형태로 넘어가면 정부의 정보통제와 빅 브러더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게다가 연합회는 지난 1982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에서 신용정보 업무가 분리된 후 30년 넘게, 70여 명의 인력으로 이 업무를 맡아 왔다.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이를 분리·이동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우리처럼 종합집중기관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고 개별 CB(크레딧뷰로)에서 정보를 집중하고 가공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한 기관에 정보를 집중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민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 하 회장이 정부의 추진 방식에 문제의식이 컸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하 회장은 11년 만에 순수 민간 출신의 연합회장이다. 글로벌 금융회사인 씨티은행에서 오랫동안 CEO를 했고, 시장의 자율기능을 믿는 시장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취임 초부터 업권과 정부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설정할지 주목받았다. 일단 이번에 하 회장이 첫 승을 따내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필연적으로 업권을 대변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할 것으로 보인다. 하 회장과 금융당국 수장 간에 어떤 스코어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