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신용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하는 '신용정보집중기관' 설립을 둘러싼 논란의 판이 커졌다. 지난해 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시작한 기관 신설 문제가 밥그릇 싸움으로 빈축을 사다가 이제는 빅브라더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형국이다.
신용정보집중기관 설립 시기와 취지, 운영 계획 등 중요한 것은 대부분 정해졌다. 그런데 누가 새 기관을 관리하느냐를 두고 이해관계자들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추진 방안에 대해 시민단체와 야당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다음 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국감에서 논의할 쟁점을 미리 짚어봤다.
◇ 애매한 부대 의견
이 문제는 얼마 전까지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의 '밥그릇 싸움'쯤으로 여겨졌다. 금융당국은 사실상 공공기관을 하나 더 만들어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앉히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기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유난히 '별도 기관 신설'을 지속해 강조해 이런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은행연합회의 경우 신설 기관이 별도 법인으로 세워지면 조직이 쪼개질 수 있다며 발끈했다. 반면 은행연합회 내부에 만들어지면 조직은 확대하고 수장의 위상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시작은 정무위원회가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애매한 부대 의견을 달면서부터였다. 신용정보집중기관 설립 조건으로 '연합회를 중심으로 구성·운영한다'는 의견을 덧붙여 놨다. 이에 여러 해석이 잇따르자 다시 '별도 (기관으로) 신설은 안 된다'며 은행연합회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런데 금융위의 주장에 따라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을 은행연합회 내부에 두거나 산하기관의 형태로 한다'는 해석을 덧붙이며 논란의 불씨를 살려뒀다. 이후 금융위는 이 기관을 연합회 산하 기관으로 만들기로 했는데, 연합회 측은 '말만 산하 기관이지 은햅연합회의 지배력이 없는 사실상의 공공기관'이라며 반발했다.
◇ 껍데기만 산하기관?
연합회 노조의 주장은 이렇다. '신용정보집중기관 이사회 5인 중 의장을 포함해 과반수를 연합회가 추천하도록 한다'고 신용정보집중기관 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 측에서 밝혔는데, 이는 추천권이지 임면권은 아니므로 지배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다.
신용정보집중기관 이사회 의장을 연합회장이 맡도록 한 것 역시 '꼼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연구원 이사회 의장이지만, 두 기관은 사실상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통추위가 신용정보집중기관을 은행연합회 산하기관으로 모양새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연합회 노조의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선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금융위도 일단 "(통추위의 결정이) 최종적인 결론이 아닌 만큼, 은행연합회와 '산하기관 구현방안'에 대해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 정말 빅브라더인가
정부의 빅브라더 우려에 대한 지적도 나올 전망이다. 금융위의 구상대로 마무리하는가 싶던 신용정보집중기관 설립 문제가 다시 이슈화한 것도 이런 우려가 부각하면서다.
정무위 소속인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18일 금융노조와 민변, 참여연대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이 한곳에 금융 정보를 모아 활용하면 빅브라더 우려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19일에는 한국노총이 성명서를 통해 "금융정보를 장악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라"며 이를 거들었다.
이들은 정부가 신용정보집중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보내 장악하면 빅브라더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식별정보라도 이를 금융위 산하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와 결합하면 충분히 식별화가 가능하므로, 정부가 방대한 개인 신용정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원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금융개혁 추진현황과 향후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
금융당국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일단 신용정보집중기관의 정보를 마음대로 FIU에 제공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또 지금도 FIU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도 법적 근거에 따라 필요하면 일부 신용정보를 받을 수 있으므로 법적으로 집중기관이 설립되기 전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감에서 야당의원들의 질타를 예상하지만, 산하기관으로 설립하는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진 일이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며 “빅브라더 논란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