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섰다. 특히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그간 기준금리 인상의 근거였던 물가에 대해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와 같은 급격한 속도의 금리인상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 역시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한미간 금리차이가 벌어지는 시간을 벌 수 있어서다. 다만 지난달 에너지요금 상승으로 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진 점은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달 31일과 1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한 결과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정책금리를 종전보다 0.25%포인트 인상한 4.50~4.75%에서 운용한다고 밝혔다.
연준 '베이비스텝'으로 금리인상 속도조절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최소화를 위해 단행했던 '제로금리' 시대를 마감했다.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통상적인 기준금리 인상 폭인 0.25%포인트를 넘어 0.50%포인트 혹은 0.7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연이어 단행하면 지난해에만 기준금리를 4.50%까지 끌어올렸다.
가장 큰 이유는 물가였다. 지난해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전세계 공급망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고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의 물가는 빠른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해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린 탓에 최근에는 물가상승압력이 다소 줄어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연준 역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는게 연준의 입장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성명문 발표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최근 완화됐다. 최근 상황이 좋아졌다"라며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오전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역시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상승률이 6개월간 꾸준히 둔화되며 연준이 통상적인 금리 인상 폭으로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봤다.
다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의장 역시 "인플레이션이 다소 둔화되지만 여전히 너무 높아 당분간은 긴축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라며 기준금리 인상을 끝내기에는 이르다고 단언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5.25%까지 인상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연내 0.25%포인트씩 두 차례 인상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발 금리부담은 덜었지만...난방비·중국의 역습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감도 다소 줄어들게 됐다. 한미간 금리차이를 1.25%선에서 유지할 수 있게되면서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국내 물가가 여전히 5%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이날 통계청이 내놓은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5.2%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5.0%까지 낮아졌던 전년동월대비 상승률이 다시 상승한 셈이다.
1월 물가 상승은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크게 올라간 것이 주 요인이다. 전기요금은 작년 1월과 비교해 29.5%, 도시가스요금은 이 기간동안 36.2%나 상승했다. 이달에도 이같은 요인들로 인해 5%대 물가상승이 예상되고 있다.
일단 한은은 이달 물가상승률은 애초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봤다. 큰 충격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날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한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가격 오름폭이 축소됐으나 전기료 인상, 한파에 따른 농축수산물가격 상승 등으로 전월 대비 다소 높아졌다"며 "이는 지난달 금통위 당시의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소비자물가는 이번달에도 5% 내외의 상승률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앞으로 물가 경로상에는 중국의 리오프닝에 따른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추이, 국내외 경기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다"라고 덧붙였다.
겨울이 지나 난방비에 따른 물가 부담을 덜더라도 중국이 코로나19로 인해 닫았던 문을 연다면 다시 물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펼치는 한은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지난 1일 한은과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공동 세미나에서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중국의 리오프닝이 본격화 한다면 글로벌 경기의 진작효과가 클 것"이라면서도 "주요국 인플레이션과 관련해서는 중국 공급망 차질 완화에 따른 하방요인, 원자재 수요 확대로 인한 상방요인이 혼재돼 불확실성이 크다"라고 짚었다.
이어 "중국의 지연 소비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면 원자재가격 등에 상방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