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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금융]⑤그 '한 발짝'이 허용되지 않는 이들

  • 2023.12.29(금) 08:00

[신년기획]성소수자, 청약·금융우대 활용 어려워
일부 인터넷뱅크, 아직도 외국인 계좌개설 제한
청년도약계좌도 소득 적으면 혜택에 '한계'
진짜 도움 필요한 '사업실패'는 상생금융도 외면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그 다음은 오른발의 차례♪'

힙합 듀오 드렁큰타이거의 노래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의 한 구절입니다. 소외를 유발하는 어려운 사회 환경에서도 조금씩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금융권도 소외계층 배려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상생'을 목표로 금융취약계층이 더욱 금융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금융권의 이용자 접근성 확대 방식이나, 이를 장려하는 금융당국의 정책들이 다양한 유형의 소외를 해소하는 데 충분하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주택청약도, 계좌개설도 그들에겐…

36세 홍상민(가명)씨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소득도 안정적입니다. 게다가 몸도 건강하죠. 같은 나이 또래들이 걱정하는 부모님의 노후도 걱정이 없답니다. 두 분 모두 오랜 기간 공무원 생활 후 은퇴해 연금이 넉넉하답니다.

그런 그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결혼 또 하나는 내 집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합니다. '동성애자'인 그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부모님 권유로 주택청약을 가입해 꾸준히 넣고 있어요. 그런데 주택청약 당첨은 꿈도 못꿉니다. 청약은 신혼부부나 자녀 등 부양가족이 있어야 유리한데 저는 법적으로 이런 가정을 꾸릴 수가 없죠."

1순위 통장을 들고도 내 집 마련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상민 씨는 "현재 교제하는 친구가 있지만 결혼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 될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주택 청약뿐만이 아닙니다. 한 가족이 함께 쓰면 혜택이 커지는 금융서비스도 그에게는 딴 세상 얘깁니다.

우리나라에 터전을 잡은 외국인들에게도 금융의 벽은 높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관련 법령에 따르면 결혼 이후 2년 이상 대한민국에 주소를 보유해야만 한국 국적 취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결혼 건수는 19만2000건이었는데 다문화 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9.1%였답니다. 결혼하는 10쌍의 커플 중 1쌍은 다문화 결혼이라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이미 다문화가정은 39만9396만가구나 됩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은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일부 인터넷전문은행에 계좌계설을 하지 못합니다. 시중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여권, 외국인등록증, 사증(비자), 투자자확인증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거래가 가능하죠. 특히 취업하지 않아 소득 증빙을 내기 어렵다면 금융사들은 거래를 더욱 꺼립니다.  

금융사들은 여권 등의 정보를 전산으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 자금세탁 등 불법거래 위험 등을 이유로 꼽습니다. 하지만 다문화가정, 이민 등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도 금융 서비스를 쉽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상생을 앞세우는 최근의 금융 정책도 정작 소득이 지나치게 적거나, 사업에 실패해 더욱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배려로 포장돼 있지만 일정 범주 밖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얘깁니다.

올해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청년도약계좌'도 '도약'이 필요한 청년들에게는 오히려 혜택이 적습니다. 일단 청년도약계좌는 이자 수입을 극대화하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매달 70만원을 납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목돈 마련을 위해 매달 소득 일부를 저금하는 청년들이 70만원을 납입할 수 있을까요? 

특히나 이제 나홀로 서기를 준비해 여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자립준비청년들 같은 경우는 소득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그림의 떡'입니다. 청년도약계좌가 올해 300만명의 가입자를 목표로 한 것과 달리 42만명 가량만 가입한 이유는 이처럼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상생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생금융은 소상공인들의 빚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빚을 줄여주는 게 진짜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례로 정부와 은행들이 추진하는 소상공인 지원 방안은 이자납부 유예, 원금 만기 연장 등이 있습니다. 이를 시행하기로 한 은행들은 사실상 모든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방안을 펼친답니다. 

자연스럽게 현재 매출이 높은 소상공인들도 해당 정책 대상에 포함됩니다. 진짜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들은 '상생'의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서울 시내에서 카페 사업에 실패한 청년 창업자 현실을 토로합니다. 서울 을지로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했던 김환정 씨는 코로나19에 '버티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목돈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게를 접었습니다.

그럼 이 대출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이제 '소상공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자유예와 만기 연장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사업을 이어간 사람에게만 도움을 주겠다는 이야기 아닌가"라며 "고물가, 고금리에 문을 닫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하는 금융지원은 찾아봐도 없더라"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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