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경제 얘기, 꼭 딱딱하게 해야 할까요? '커피챗 경제'는 커피 마시며 가볍게 수다 떨듯 경제 이슈를 풀어갑니다. "아니, 그거 들었어?"로 시작해서 "아~ 그렇구나!"로 끝나는 재미있는 경제 수다. 지금 가장 핫한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호기심 어린 솔직한 질문과 속 시원한 답변으로 채워가겠습니다.

지난 1편에선 18년 만에 도마 위에 오른 연금개혁안의 내용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지난 3월 국회와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안'을 통과시켜 기금 고갈 시기를 뒤로 늦추고자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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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불은 겨우 껐다만, 연금개혁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동안 관련 뉴스를 지켜봐온 분들이라면 연금제도를 손보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잘 아실겁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급격한 인구변화나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자동조정장치'입니다. 말 그대로 국민연금 재정 상황에 따라 소득대체율, 연금액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시스템입니다. 긴 시간의 합의 과정 없이도 연금 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죠.
한마디로 국민연금의 수명을 늘려주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줄 존재라는 겁니다. 이것이 자동조정장치 도입 여부가 앞으로 진행할 연금개혁 논의에서 핵심쟁점으로 자리잡은 이유입니다.
이번 커피챗 경제에서는 자동조정장치를 활용하는 주요국 사례, 그리고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대한 정부와 여야 입장차까지 살펴보겠습니다.

해외에서 많이들 활용한다던데?
네, 그렇습니다. 자동조정장치는 이미 OECD 38개 회원국 중 24개국이 도입해 운영 중에 있죠. 각 국가별 경제상황, 도입 취지가 제각각이다보니 자동조정장치의 구조와 작동 방식도 천차만별로 나뉘는데요. 이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일본식, 스웨덴식 모델을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① 일본식 모델: '기대수명·출산율'에 따라 조정
일본의 자동조정장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폭으로 연금액을 인상해 점진적으로 실질 연금액을 줄이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제도였죠.
그렇다면 관건은 "연금 인상률을 책정할때, 물가상승률에서 얼마나 낮춰야하는가?" 일텐데요. 연금 인상률을 계산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금 인상률 = 물가상승률-(최근 3년간 연금가입자 연평균 감소율+기대수명 증가율)
쉽게 예시를 들어볼게요. 매월 100만원의 연금을 받는 노인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5%라면, 이 노인은 내년엔 월 105만원은 받아야 본전일 겁니다.

그러나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가동되면 그 인상률이 소폭 낮아집니다. 만일 같은 시기에 저출산으로 연금가입자 수가 매년 평균 2%씩 감소했고, 고령화가 지속돼 기대수명이 1% 늘었다면 물가상승률 5%에서 3%(2%+1%)를 차감한 2%분만 인상되는 것이죠.

원래라면 내년에 105만원씩 받을 것이었지만 102만원만 받는 것에 그치게 되는 겁니다. 기존 100만원보단 명목상의 금액은 더 받는다지만, 인플레이션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가치는 떨어진 것이죠.
그렇다면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거나 아예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 어떻게 될까요. 연금액이 덜 오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금액 자체가 삭감되는 것 아닌가 싶으실 겁니다. 다행히도 이럴 땐 연금액은 동결하는 선에서 그치게 됩니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죠.
② 스웨덴식 모델: '경제상황·연금재정'에 따라 조정
스웨덴은 1998년, 대대적인 연금 구조개혁을 진행했습니다. 바로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연금 구조를 전환한 것이죠. 과거엔 스웨덴의 공적연금도 가입기간 동안의 평균 월소득을 산출해 고정된 연금액을 지급하는 '확정급여(DB)' 형식을 취했습니다.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연금제도와 유사했죠. 단, 이 방식은 은퇴자들이 장수하면서 생기는 연금 재정부담을 청년층들이 짊어야한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웨덴은 구조개혁을 통해 연금급여액은 은퇴자가 그동안 내온 보험료의 총액과 그 보험료를 적립하는 동안 발생했던 이자만큼만 받을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은퇴자들의 연금 급여는 각각이 적립해온 총액에서 '연금계수(annuity divisor)'를 나눈 값으로 책정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은퇴자가 속한 연령집단의 평균 기대수명이 증가할수록 이 연금계수의 값도 함께 증가해, 오래 살수록 연금액이 감액되는 구조로 바꾸었죠. 한 마디로 장수에 대한 리스크는 스스로가 지게끔 설계한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스웨덴식 자동조정장치도 도입했습니다. 연금재정 상태에 따라 연금 액수를 자동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죠.
스웨덴의 연금재정 상태는 '균형비율'이라는 지표로 판가름 됩니다.
균형비율은 보험료 수입 등으로 구성된 '총연금자산'에서 미래에 지출될 연금총액인 '총연금부채'를 나눈 값입니다. 연금자산이 연금부채보다 크다면 재정상태가 안정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럴 땐 연금액은 임금상승률에 맞추어 따라갑니다.
반대로 연금부채가 연금자산을 초과하게 돼 균형비율이 1을 밑돈다면 재정이 불균형한 상태에 놓였다고 간주하는데요. 이때 자동조정장치가 발동하는 것입니다.
스웨덴식 모델은 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보다 더욱 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상황에 따라 연금 인상폭만 줄이는 정도라면 스웨덴식 모델은 금액 자체가 삭감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도 도입하려 했었다고?
맞습니다. 최근까지도 정부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는 연금개혁 추진계획안을 발표하면서 한국형 자동조정장치 모델을 제안한 바 있죠.
보건복지부가 제안한 모델은 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에서 착안한 형태입니다. 한국형 모델 또한 가입자 수와 기대수명 추이를 반영해 기존 수급자의 연금 인상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고안된 겁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자동조정장치의 적정 발동시기를 세 가지로 분류해 각각의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각각 연금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초과하는 시점(2036년), 전체 재정의 적자전환(=수지적자) 발생 5년 전(2049년), 수지적자 발생시점(2054년)으로 나누어 검토했죠.
세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시기가 빠른 2036년에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된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 연금 고갈 시점은 2088년이었습니다. 이는 지난 3월 모수개혁안이 통과되기 전, 국민연금의 예상 고갈 시점이었던 2056년에서 무려 32년이나 연장된 계측입니다.
국내 실제 도입 가능성은 어때?
한국은 아직 자동조정장치 도입 자체를 놓고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당을 비롯한 재정안정론자들은 국민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필수불가결하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은 지난 3월 통과된 모수개혁안에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포함할 것을 끝까지 주장했지만 결국 이는 개혁안에서 제외되었죠.
반면 야당을 비롯한 소득보장론자들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연금액 삭감으로 이어져 노인빈곤율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또 야당 의원들은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 2023년에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해 "일본식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하게 된다면 총연금 수령액이 17%나 감소한다"며 "자동조정장치는 곧 '연금 삭감장치'와 다를 바 없다"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제안했던 한국형 모델 역시 지난 연금특위 내내 표류만 하다 결국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듯, 이번 연금특위에게 그 몫을 넘겨버렸죠.
K-자동조정장치의 도입 여부는 이번 22대 국회가 꾸린 연금특위의 논의 결과에 달려있는데요. 그러나 연금특위에 구성된 여야 의원들의 의견차가 극명하게 갈리다보니 크게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