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전자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제조업 전반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전카드가 요구된다. 한국 제조업이 처한 현실을 짚어보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 방향, 새로운 성장모델 등을 제시해본다. [편집자]
"지금 당장은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큰 문제입니다. 지금 주력사업들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반면 이를 대체할 만한 사업을 갖추지 못했어요. 이대로 가면 서서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10대 그룹 한 임원의 얘기다. 기업들이 늘상 말하는 엄살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 한국 제조업이 처한 현실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표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는 최근 발표되고 있는 실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9.56%, 18.1% 감소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환율 등 대외변수도 부정적이다. 10대 그룹 주요 계열사 가운데 작년보다 실적이 개선된 곳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재계를 중심으로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방위적인 지원에 힘입어 일본 제조업이 부활중이고, 중국 역시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이다.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아무리 좋은 정책과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 약해진 체력..빨라진 하강속도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이미 상당기간 전부터 예고돼 왔다.
문제는 실적 악화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제조업 매출액 증가율은 지난 2010년 18.7%에서 2011년 13.5%로 낮아졌고, 2012년에는 4.1%로 급락했다. 2013년에는 0.7%로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렀다. 영업이익률 역시 2010년 7.8%에서 2011년 6.6%로 떨어졌고, 2012년이후 5%대로 떨어졌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가 발표한 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실적을 봐도 상황은 암울하다. 496개 상장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1821조원으로 전년보다 0.4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2.96% 줄어든 91조원에 그쳤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5.02%로 1000원짜리 물건을 팔아, 50원 가량만 영업이익으로 남겼다.
상장기업중 대부분이 국내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주요기업들이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수익성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국내 산업구조상 기존 대기업 외에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제조업체는 100만개중 단 7개에 불과했다.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300~500인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비율도 제조업의 경우 0.06%에 불과했다. 1만개중 6개만 한단계 올라섰다는 의미다.
▲ 한중일 상장기업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자료: 전경련) |
◇ 日·中에 뒤처지고 있다
반면 경쟁국가로 지목되는 일본과 중국은 한국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금융위기 이후 한·중·일 상장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성장성과 수익성 등의 지표에서 일본, 중국기업에 한참 뒤처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아베정권 출범후 엔저가 유지되면서 수출경쟁력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일본기업은 2011년과 2013년 매출액 증가율이 3% 아래에 머물렀지만 2013년과 2014년은 11.5%와 4.7%를 기록하는 등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기업은 외형적인 성장속도는 둔화됐지만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2011년 5.7%로 일본과 같은 수준을 기록한 이후 2012년에는 5.2%로 낮아지며 5.8%를 기록한 일본기업에 추월당했다.
특히 2013년에는 한국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5.0%로 낮아진 반면 일본은 6.8%를 기록했고, 2014년에는 각각 4.8%와 7.2%로 격차가 확대됐다.
전경련은 "한국기업은 내수업종 위주로 매출성장이 확대된 반면 수출주도 업종의 매출성장은 둔화됐다"며 "한국 주력 수출산업군에 포함된 업종은 중국의 성장둔화, 엔저로 인한 일본과의 경쟁심화 등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 제조업 육성 나선 선진국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을 포함한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들이 제조업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성장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 정책 우선과제로 대두되면서 제조업이 성장과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은 제조기업 법인세를 인하하고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지역거점이 되는 연구기관을 통해 혁신기술을 선정, 지원하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에 대해 세제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2013년 '제조업 4.0'을 통해 정보통신기술과 결합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일본 역시 2013년 '일본산업재흥플랜'을 발표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이를 더 보완했다.
이같은 지원에 따라 선진국 제조기업들의 성과가 2013년부터 개선되는 추세로 반전했다는 설명이다. 한국 기업들의 실적 하강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수출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커지고 내수서비스 중심 성장이 강조되면서 제조업 부문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이라며 "하지만 내수성장은 제조업 부문에서의 높은 경쟁력이 뒷받침될 때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제조업은 중국 등 신흥국의 추격에 더해 오래된 제조업의 전통과 노하우와 IT로 재무장한 선진국 제조업과도 싸워야 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LG경제연구원은 "제조업은 저임금으로 경쟁하던 분야에서 고부가가치화와 혁신이 중요한 분야로 바뀌고 있다"며 "선진국들이 다시 제조업을 재조명하는 것은 제조업의 경쟁력이 국가의 장기 번영을 이끄는 핵심 요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