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힘으로 단기금융업 시장을 커버할 수 없다. 이 시장을 키우려면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한다. 사이즈업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의미 있는 시장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 1호 타이틀을 달던 날 기자간담회에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한 말이다. 발행어음 1호가 가질 수 있는 이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당시만 해도 업계에서는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초대형 IB가 된 대형 증권사들이 속속 발행어음 발행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결국 발행어음 2호 탄생은 해를 넘겼고 새해도 2주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삼성증권의 경우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일찌감치 제외됐다지만 지난 10일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상정될 것으로 기대됐던 NH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인가도 불발되면서 다시 2주 뒤를 기약하게 됐다. 심사가 아직 덜 됐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다른 증권사 사정도 비슷하다. 미래에셋대우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인해 심사가 보류된 상태이고 KB증권은 아예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그림대로라면 NH투자증권이 뒤늦게 합류하더라도 초대형 IB 가운데 달랑 2곳만 발행어음을 내놓으면서 '반쪽' 시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유상호 사장은 발행어음 1호만의 이점에 대해 "똑같은 업무를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투자자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굳이 꼽는다면 처음으로 선점했다는 이미지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이미지 효과는 충분히 봤고 후발주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으면서 발행어음 시장 위상 자체가 시작부터 쪼그라들게 된 상황에서 선점 효과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현 분위기대로라면 NH투자증권이 합류한다 해도 초대형 IB의 위상이나 역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 기자 혼자만의 생각일까.
초대형 IB는 발행어음을 통한 기업 신용 공여 외에도 역할이 다양하지만 은행 등이 전혀 커버할 수 없는 성장성 높은 기업들에게 든든한 실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필수적 이다.
지지부진한 초대형 IB 흐름은 전날(11일) 나온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과 대조를 보인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모험자본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코스닥을 살리기 위한 대대적인 방안을 내놨지만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초대형 IB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다.
모험자본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열쇠임에도 은행과의 업권 경쟁을 의식한 것은 물론 초대형 IB가 박근혜 정부 당시 나온 산물이기 때문은 아닐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경쟁이야말로 최고의 경쟁력이란 말이 있다. 경쟁 없이 홀로 뛰어들어 시장 개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투자증권 입장에서도 독점 상황이 마냥 좋을 리 없을 것이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들을 진정으로 육성하고 싶다면 조속한 초대형 IB 발행어음 인가에도 신경을 써야 균형 잡힌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