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으로 '합산 3%룰'이 확대 적용되면서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대기업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감사위원회 구성에 변화가 예상된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발행주식총수의 3%로 제한되면서, 행동주의 펀드나 소수주주가 추천한 감사위원이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대응책으로 이사 수를 늘리는 등의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늬만 3%' → '찐 3%'로 강화
국회가 지난 3일 통과시킨 상법개정안에는 3%룰 확대 적용안이 포함돼있다.
3%룰이란 감사위원 선임시 의결권을 발행주식총수(의결권 없는 주식 제외)의 3%로 제한하는 제도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감사위원회 제도를 정비하면서 도입했다. 그러나 이사를 먼저 선출한 후 그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한 특례조항 탓에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상법 개정을 통해 감사위원 중 1명을 분리선출하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되며 3%룰은 실효성을 갖게됐다. 다만, 이때도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에게만 합산3%룰(최대주주인 경우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 3%까지 행사)이 적용됐다.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의 경우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각각 3%씩 행사(개별 3%룰) 할 수 있어, 계열사나 백기사가 지분을 나눠 가진 다음 표결하는 우회 시도가 빈번하게 이뤄졌다. 이른바 지분 쪼개기, 지분 빌려주기 등의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이번 개정은 감사위원의 신분이 사내이사든 사외이사든 상관없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통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앞으로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모두 합치더라도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3%를 넘기지 못한다. 해당 조항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주주총회 시즌부터 본격 적용한다.
그동안 '무늬만 3%룰'이었던 조항이 '찐 3%룰'로 바뀌면서, 행동주의펀드나 소수주주 등이 감사위원회 선임을 '교두보' 삼아 다양한 경영 참여 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5대 그룹 총수일가 입김 확 준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총수일가 여러명이 지분을 나눠가진 형태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 그룹 지주사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는 대기업 그룹의 정점에 있는 지배회사로, 일반적으로 총수가 10~20%의 지분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가족·계열사·재단 등 특수관계인으로 분산 보유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총수 한명이 지분을 다 들고 있기엔 자금 부담이 큰 탓에 특수관계인들과 지분을 나눠가지면서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개별 3%를 적용하더라도 의결권을 최소 10% 이상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합산 3%룰을 적용하면 의결권이 대폭 감소한다. 5대 그룹 지주사의 1분기보고서 기준 지분율을 분석한 결과, 합산 3%룰 적용으로 평균 16%포인트 수준의 의결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그룹 지주사 LG의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1.7%, 의결권 기준 39.3%다. 기존 개별 3%룰 하에서는 29.9%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합산 3%룰이 적용되면 5.4%로 급감한다. 참고로 감사위원 선임시 3% 초과분은 발행주식총수에서 제외한다.
롯데그룹 지주사 롯데지주는 51명의 특수관계인이 지닌 의결권은 개별3%룰 적용시 35.5%에 달하지만 합산 3%룰 적용시 7.6%로 28%포인트 급감한다.
SK그룹 지주사 SK는 최태원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34.0%의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데, 개별 3%룰 적용하면 10.9%의 의결권이 인정된다. 합산 3%룰을 적용하면 4.9%로 줄어든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삼성물산 역시 이재용 회장 및 특수관계인(공익재단 제외)의 의결권이 기존 36.8%에서 개별 3%룰 적용 시 17.4%, 합산 적용 시 5.6%로 줄어든다.현대차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도 개별 3%룰 기준 14.3%에서 합산3%룰 적용으로 4.7%로 내려앉는다.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 기대"
전문가들은 제도 강화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헌 아이엠증권 연구원은 LG 종목 보고서에서 "소액주주나 해외 기관, 행동주의 펀드 등이 감사위원 선임·해임을 매개로 경영에 개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비대해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은 3%룰을 통해 주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감사위원을 집어넣으려는 주주 행동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라도 들여보내자는 감사위원회 제도 취지에 맞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는 "주주제안으로 감사위원을 추천하려면 지분 요건도 채워야하고 감사위원으로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 등등 주주입장에선 3%룰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사위원 추천 및 선임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까지 1년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는 만큼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선 내년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감사위원을 재선임하거나, 이사 수를 확대해 우호세력을 늘리는 방식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감사위원이 1명 정도 들어오더라도 과반수를 차지할 경우 이사회 의결을 진행할 수 있다"며 "모수(이사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최대주주의 몸집을 키워 오히려 지배구조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