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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통신 130년]①큰절 네번 올리고, 수화기를 들다

  • 2015.09.22(화) 10:39

한성전보총국-체신부-한국전기통신공사-KT로 명맥 이어져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시대를 넘어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s Technology·정보통신기술) 시대로 진입한 게 짧은 기간이지만, 오래된 일이다. 시간보다 기술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생각보다 먼 과거로 느껴진다. 여기에 융합기술이 뒤섞이면서 영화 속에서나 상상했던 것들도 일상에서 실현되고 있다. 나아가 생각을 앞서는 기술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생활,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킨다. 통신과 역사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구한말 청나라 지원을 받아 가설했던 전신을 시작으로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등 지난 130년간 이어온 대한민국의 통신 역사를 살펴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그려본다.[편집자]

 

▲ 1896년 궁중에서 사용했던 자석식 전화 교환기와 교환수 [사진=KT]

 

"전하께서 곧 전화를 하실 것이오. 의관을 정제하고 기다리시오"

'따르릉 따르릉'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신 판부사 이림, 전하의 어명으로 전화를 받겠나이다"

 

1890년대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 모습이다. 당시 전화는 궁 내부를 중심으로 가설됐다. 특히 고종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신하와 직접 통화했다고 한다. 이때 내시는 신하에게 고종이 전화할 시간을 미리 알려줬고, 전화받을 신하는 의관을 정제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전화가 걸려오면 전화기를 향해 네 번 절하고 두 손으로 공손히 전화기를 받았다고 한다.

 

◇1885년 최초 전신선 개통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도입된 근대통신은 전신이다. 전신은 문자와 사진 전송에 이용되는 기술로, 인터넷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고종은 개화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우편제도와 전신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갑신정변 실패로 오히려 청나라의 지배권이 강화됐고, 이를 기회로 청은 우리나라에 전신선을 가설하고 자국과 연결하려 했다. 결국 1885년 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전신선 가설이 시작됐고, 그해 9월28일 서울-인천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선이 개통됐다. 동시에 지금의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서울청사 사이 세종로 공원(세종로 80-1번지) 자리에 행정관청인 한성전보총국이 설립됐다. 이것이 KT 130년 통신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부산, 북쪽으로는 개성-평양-의주를 잇는 전신선이 추가로 구축되면서 한성전보총국과는 별도로 조선전보총국이 세워졌다. 이처럼 통신 시설에 관심을 갖게 된 우리나라는 1896년 최초로 전화를 개통시켰다. 경운궁(현 덕수궁)에 전화 교환대를 설치하고 왕실업무를 맡고 있던 궁내부와 각 부처를 연결해 어명을 전달했다.

 

6년 후인 1902년에는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전화기가 서울-인천간 개통됐다. 당시 규칙에 따르면 전화는 5분을 한 통으로 했고, 요금은 한 통에 50전(錢)을 받았다.

 

▲ 1902년 최초로 전화업무를 개시한 한성전화소 전경 [사진=KT]

 

◇아파트 아닌 '전화 청약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통신주권을 빼앗겼다가 해방 후 되찾았지만 조악한 통신시설과 인력부족에 한계를 느꼈다. 또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든 산업시설이 파괴됐다. 전쟁 이전 수준의 통신시설을 갖추게 된 것은 1957년 무렵이다.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통신산업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해외 차관으로 전화시설 확장에 주력했고, 62년 국산전화기가 첫 생산됐다. 이는 광복 이후 사용중인 전화기 종류가 너무 다양해 보수·유지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인 공중전화가 등장한 것은 1962년이다. 당시 화신백화점(지금의 종각 맞은편) 앞에는 5원 동전을 넣으면 통화할 수 있는 공중전화기가 설치됐다. 1970년 9월에는 전화수요가 폭증하자 백색·청색 전화제도를 도입하고, 청약 우선 순위로 개통을 시작했다. 백색 전화는 전화 가입권 양도가 가능했고, 청색 전화는 사용권만 인정됐다. 

 

▲ KT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90년 TDX 200만 회선 개통식을 가지며 본격적인 전화 대중화를 알렸다. [사진=KT]

 

1975년 서울지역 전화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7.6대로 늘어났고, 전국 가입자도 100만을 넘겼다. 불과 6년만에 전화 가입자가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갖춘 것은 자동식 전자교환기 TDX-1 개통과 1000만 전화회선 돌파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KT가 1986년 세계에서 10번째이자 순수 우리 기술로 TDX-1을 상용화한 후 전화 가입자는 빠르게 증가했다. 1988년 1000만 가입자를 기록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KT 관계자는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설립된 후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통신국(1910년), 경성우편국 용산전화분국(1922년), 경성무선전신국(1923년)이 통신업무를 대신했다"면서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체신부(1948년)로 변경됐고 한국전기통신공사(1981년), KT(2002년)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통신 역사의 명맥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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