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버스그룹의 주력사인 이테크시스템이 29일 SG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1800억원 규모의 외부투자를 받았다. 이테크시스템은 IT컨설팅, 시스템·네트워크 구축사업을 하는 곳이다.
삼성SDS·LG CNS·SK C&C가 대기업과 금융회사를 주고객으로 두고 있다면, 이테크시스템은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활발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이 4157억원에 달했다.
이테크시스템 뒤에는 모기업인 에티버스와 든든한 협업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에티버스는 오라클·시스코·휴렛패커드(HP)·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IT기업과 국내 총판계약을 맺고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단순히 장비를 납품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티버스가 AWS 클라우드 솔루션을 중소기업에 판매했다면, 이테크시스템은 이를 구입한 회사를 대상으로 시스템구축과 관리를 해주며 돈을 번다. 자재납품부터 설계·감리·완공 후 유지보수까지 일사천리로 책임지는 형태다.
◇정명철·명천, 형제는 용감했다
에티버스그룹의 출발은 서울 용산 전자상가다. 정명철(68) 회장의 동생인 정명천 대원그룹 회장이 1988년 대원컴퓨터라는 업체를 차려 컴퓨터와 프린터 등을 팔았는데, 장사가 잘되자 형을 불렀다. 그렇게 설립한 업체가 영우컴퓨터(1993년)다.
동생은 대원컴퓨터를 통해 소비자용 제품(B2C) 판매에 주력했고 형은 영우컴퓨터를 차려 기업용 제품(B2B) 시장을 공략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러 대원컴퓨터는 대원씨티에스를 주력사로 하는 대원그룹으로, 영우컴퓨터는 에티버스그룹으로 각각 성장했다.
에티버스라는 사명도 영우컴퓨터에서 유래한다. 영원한 우주라는 뜻의 '영우(永宇)'를 영어로 바꾸면 '이터널 유니버스(ETERNAL UNIVERSE)'가 된다. 단어 앞뒤를 축약해 에티버스라고 지었다. 이 회사의 개별기준 매출은 지난해 약 6000억원이지만 관계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 매출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에티버스·이테크시스템을 비롯해 에티버스eBT·에티버스E&L·에티버스ePA·에티버스소프트 등이 그룹사로 묶여있다. 2022년 8월 남대문이 훤히 보이는 중구 소월로로 사옥을 이전했으며 이곳에는 그룹사 직원 1000여명이 근무 중이다.
◇유통에서 IT기업으로 전환
이번 투자유치는 에티버스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그룹의 성장축이 바뀐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에티버스는 크게는 IT회사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유통회사에 가깝다. 지난해 매출액 6000억원 가운데 매출원가가 5400억원을 차지했다. 전체 매출의 90% 가량이 남의 회사 것을 떼와서 판매해 발생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3.5%에 불과하다. 특히 에티버스는 1년 단위로 글로벌 IT기업과 총판계약을 갱신하는 구조다. 남의 것 말고 내 것이 필요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테크시스템도 매출원가 비중이 높지만 에티버스보다는 덜한 편(82.5%)이다. 특히 이 회사의 클라우드사업본부 매출은 매년 160% 성장해 지난해 최대 매출을 올렸다. 온프레미스(기업 내부 데이터센터), 프라이빗 클라우드, 퍼블릭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등으로 IT 인프라 환경이 재편되는 큰 흐름을 탔다. 기술력만 뒷받침된다면 글로벌 IT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갑툭튀 '디지털뉴딜' 빠진다
당장은 지배구조 변화가 예상된다. 그룹의 모회사인 에티버스의 최대주주는 정명철 회장이 아닌 '디지털뉴딜'이라는 회사다. 디지털뉴딜은 현재 에티버스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에티버스는 2021년 12월 사모펀드인 한국투자프라이빗과 기앤파트너스로부터 100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그 때 디지털뉴딜이 에티버스의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디지털뉴딜의 지분 절반은 사모펀드가, 나머지 절반은 이테크시스템이 50대 50 비율로 나눠갖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룹의 모회사인 에티버스가 사모펀드의 영향력 아래 있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디지털뉴딜 대표를 맡고 있는 기황영 기앤파트너스 대표는 현재 에티버스의 기타비상무이사도 맡고 있다. 반면 정명철 회장은 디지털뉴딜의 기타비상무이사만 맡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에티버스 지배구조가 흔들리면 핵심 주력사 중 하나인 에티버스eBT의 경영권도 장담할 수 없다. 디지털뉴딜→에티버스→에티버스eBT로 출자구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최상단 '이테크시스템'
이번 투자유치로 들어온 자금은 한국투자프라이빗과 기앤파트너스에서 받은 투자금 상환 등에 쓰일 전망이다. 이를 통해 이테크시스템→에티버스→에티버스eBT의 구조를 만든다는 게 그룹의 계획이다. 디지털뉴딜이 빠지는 구조다.
이테크시스템의 지분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으나 정명철 회장의 영향력에 무리가 생길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에티버스그룹 관계자는 "정확한 지분율을 공개할 순 없지만 이테크시스템에 대한 사모펀드의 지분율은 50%가 안된다"고 했다.
정명철 회장은 "이번에 유치한 투자금으로 에티버스그룹은 이테크시스템 중심의 지배구조 일원화와 의사결정 효율화를 실현하는 등 그룹의 역량을 집중해 향후 단기간내 기업공개(IPO) 추진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2세 승계준비도 '착착'…경영수업
에티버스그룹은 2세 승계를 위한 작업도 차분히 진행 중이다. 정명철 회장은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장남과 차남이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장남 정인성(40) 씨는 에티버스eBT·시소몰 등의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고 있고, 차남 정인욱(37) 씨는 에티버스·에티버스E&L 등에서 대표이사 타이틀을 달고 있다. 차남이 모회사인 에티버스, 장남이 그 계열사인 에티버스eBT를 맡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딸인 정인나(33) 씨는 에티버스ePA 사내이사로 있다. 각자의 역할을 보면 자녀들의 승계구도가 명확하게 나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에티버스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올라설 이테크시스템의 지분구조를 보면 정인성 대표의 지분이 두 동생들보다 많다.
현재 이테크시스템은 정명철(23.7%), 정인성(21.9%), 정인욱(18.9%), 정인나(18.1%), 양경남(15.2%), 에티버스ePA(2.2%)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전량을 보유 중이다. 정인성 대표의 경우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티버스ePA 지분까지 포함하면 이테크시스템에서 아버지인 정명철 회장보다 지분율이 근소하게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