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양대 방산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미국 조선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두 회사의 공략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현지 조선소를 인수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HD현대의 경우 미국 조선소와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HD현대, 현지 조선사 협력해 상선 건조
HD현대는 최근 미국 조선사인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미국 상선 건조를 위한 전략적·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양사가 LNG(액화천연가스) 이중연료 컨테이너 운반선 건조에 협력하는 게 골자다. ECO는 미국 내 5개의 상선 건조 야드를 보유한 조선 그룹사다. 현재 해양 지원 선박(OSV) 300척을 직접 건조해 운용하는 등 OSV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꼽힌다.
양사는 오는 2028년까지 ECO 조선소에서 중형급 컨테이너 운반선을 공동으로 건조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HD현대는 선박 설계와 기자재 구매대행, 건조기술 지원 등을 제공하고 블록 일부도 제작해 공급할 계획이다. 기술 자산에 대한 투자도 병행한다. 이를 통해 양사는 향후 협력 범위를 다양한 선종으로 넓히고 안보 이슈가 강한 항만 크레인 분야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HD현대가 ECO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미국 내 사업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국가 간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한때 선박 건조량 1위였던 미국 조선업은 200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건조 역량이 후퇴하며 해군력이 약화했고, 생태계까지 무너진 상태다. 이에 미국 해군은 향후 30년간 364척을 건조하는데 1조750억달러(1600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계획에 동참할 만한 가장 유력한 동맹국이 조선업 강국인 한국이다.
이에 HD현대는 올해 4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도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미시간대학교, 서울대학교와 '조선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협력 MOU도 체결하는 등 미국과의 조선·해양 분야 협력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부터 작년까지 3개년 간 미국 조선사가 수주한 전 세계 컨테이너 운반선의 수는 미국 선주사에서 발주한 3600TEU급 3척이 전부다. ECO가 상선 건조 기술 확보를 위해 HD현대에 협력을 요청한 이유다. 이번 협력을 통해 양사는 미국의 글로벌 상선 건조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미국은 우리의 든든한 우방이자 중요한 사업 파트너"라며 "ECO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조선업 재건 및 안보 강화 노력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접 현지 진출하는 한화
이는 경쟁사인 한화가 미국 직접 진출을 택한 것과는 다른 행보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12월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조선업에 직접 진출한 바 있다. 한화 측은 필리조선소 인수를 두고 "한화오션이 보유한 최고의 기술력과 솔루션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글로벌 해양 방산 산업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한화는 호주 조선·방산업체 오스탈 지분 확보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오스탈 지분을 최대 100% 보유할 수 있는 승인을 받기도 했다. 한화는 올 3월 장외거래를 통해 오스탈 지분 9.9%를 인수했고, 동시에 19.9%까지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호주와 미국 정부 승인을 신청한 바 있다.
오스탈은 호주에 본사를 둔 글로벌 해양방산회사로 미국 앨라배마주 모바일과 샌디에이고 등에서 조선업을 경영하고 있다. 오스탈의 미국 내 소형 수상함과 군수 지원함 시장 점유율은 40∼60%로 1위다.
한화그룹은 이번 승인을 계기로 한화오션의 조선 사업 역량을 오스탈의 글로벌 사업에 접목해 양사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릴 계획이다. 미국과 호주의 방산 시장에서 공동 사업 확대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