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이냐 존속이냐
유동성 위기로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본격적으로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법원이 기업회생 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허가하면서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20일 홈플러스의 인가 전 M&A를 승인하고 매각주간사로 삼일회계법인을 선정했다. 인가 전 M&A란, 회생계획안이 법원에 인가를 받기 전 M&A를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업을 청산시키는 대신 M&A를 통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다. 쌍용자동차, 이스타항공 등이 인가 전 M&A를 거친 바 있다. 최근에는 티몬이 인가 전 M&A로 오아시스에 인수되며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홈플러스는 지난 13일 서울회생법원에 인가 전 M&A를 신청했다. 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 삼일회계법인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3조6816억원)가 계속기업가치(2조5059억원)를 상회한다는 조사보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가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반면 홈플러스 기업회생 관리인인 김광일·조주연 홈플러스 공동 대표는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가 3조7294억원으로 청산가치보다 높다고 봤다. 사업을 계속 영위하는 게 청산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법원은 조사위원의 권고에 따라 인가 전 M&A를 진행하기로 했다.
홈플러스 매각은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추진된다. 우선협상대상자를 먼저 선정한 후 공개입찰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공개입찰에 응찰자가 아예 없거나 우선협상대상자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선협상대상자가 최종 인수자로 확정된다. 인수자 선정이 완료되면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계획안에 대한 동의를 얻은 후 법원의 인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격이 관건
시장에서는 홈플러스의 몸값이 매각 성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서는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회생계획에 의한 변제방법이 채무자의 사업을 청산할 때 각 채권자에게 변제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않게 변제 해야 한다)'을 명시하고 있다. 즉 원칙적으로 홈플러스의 매각가는 청산가치를 넘는 3조70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다만 이는 홈플러스 지분 100%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인수자가 사들일 지분에 따라 매각가는 달라질 수 있다. 또 채권자들의 동의 여부에 따라 매각가 조정이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홈플러스 매각가가 1조원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홈플러스가 매력적인 매물이 되느냐 여부는 매각가에 달려있다. 인수자 입장에서는 국내 2위의 대형마트를 적은 값에 매입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어서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계속 영업할 경우 2028회계연도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뒤 2035회계연도까지 8년간 총 5170억원의 영업이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홈플러스가 최근 임대료 협상을 통해 판매관리비의 18~20%를 차지하는 임대료를 크게 낮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올해(2025회계연도)부터 2035회계연도까지 11년간 홈플러스가 거둬들일 영업현금흐름은 1조836억원에 달한다. 또 자산 매각 등 효율화를 통해 현금을 추가로 회수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무리한 인수 될까
홈플러스의 인수 후보자로는 같은 유통업계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이 주로 거론된다. 국내 기업으로는 최근 아워홈 인수 등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한화그룹,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GS그룹, 실탄이 충분한 쿠팡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도 홈플러스 인수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대형마트 시장의 성장세가 완전히 멈췄다는 점은 홈플러스 매각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로 유통시장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완전히 이동하면서 대형마트 업체들은 모두 고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개사의 매출액 합계는 2011년 이후 2023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계속 전년보다 뒷걸음질쳤다. 지난해의 경우 백화점, 편의점, 준대규모점포(SSM) 등의 매출액이 모두 전년보다 성장한 것과 달리 대형마트의 매출액만 전년보다 0.8% 감소했다. 홈플러스의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점포를 계속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 매각가가 아무리 낮아도 조 단위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뜻 인수에 나설 후보가 많지는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수자가 2만명의 직원 고용 승계와 대규모 적자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자금력이 충분한 사모펀드의 경우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기업회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홈플러스를 인수하지 못할 거라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를 3조7000억원보다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건 기회지만 추후 홈플러스의 턴어라운드와 성장 가능성, 투자 회수를 고려할 때 쉽게 인수를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