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2구역 재건축 사업의 시공사 선정 입찰에 불참을 선언했다. 삼성물산은 해당 조합에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문을 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올해 초부터 압구정 재건축 수주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던 만큼 이례적 선택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입찰 공고 후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26일)를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의 결정이다. ▷관련기사: '압구정2구역' 전운…삼성vs현대 재대결 막 올랐다(6월19일)

압구정 2구역은 강남구 한강변 최상급지인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 가운데서도 사업 추진이 가장 빠른 '첫 단추'다. 공사비 예정 가격만 2조7488억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 1월 한남4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에 이어 도시정비사업 강자인 현대건설과 두번째 경쟁 구도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두번째 빅 매치는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삼성물산 측은 "압구정2구역을 전략사업장으로 선정하고 글로벌 건축디자이너, 금융사 협업 등 적극적으로 입찰 참여를 준비해 왔다"면서 "하지만 조합의 입찰조건을 검토한 결과 이례적인 대안설계 및 금융조건 제한으로 인해 당사가 준비한 사항들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세계적 건축설계사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혁신적 대안설계를 준비해 왔으며, 5대 시중은행 및 주요 대형 증권사와 협업을 통해 최상의 금융조건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입찰공고가 뜨기 한달 반 전인 지난 5월 초부터는 아파트 맞은편에 대규모 전시관인 '압구정 에스라운지(S.Lounge)'를 마련했다.
하지만 압구정2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대의원회의에서 △대안설계 범위 대폭 제한 △모든 금리 양도성예금증서(CD)+가산금리 형태로만 제시 △이주비 LTV 100% 이상 제안 불가 △추가이주비 금리 제안 불가 △기타 금융기법 등 활용 제안 불가 등 입찰 지침을 통과시켰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의 결정을 존중하나, 현 입찰지침으로는 월드클래스 설계 및 디자인 등 당사가 구현하고자 하는 글로벌 랜드마크 조성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압구정 타 구역 조합과 적극 소통해 압구정 일대에 수주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합이 대안설계에 제한을 둔 것은 사업 '속도'를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압구정2구역은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현재 주동 위치나 각 동 층별 가구수 등을 모두 확정한 상태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만약 삼성물산의 대안설계를 받아들일 경우 동이 변경되는 데다 스카이라인도 달라질 수 있다"며 "서울시가 한강 변 스카이라인에 민감한 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2구역 조합은 오세훈 시장 역점사업 중 하나인 신속통합기획을 통한 빠른 속도 그대로 가고 싶어 했다"며 "삼성은 어떻게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필연적으로 사업이 늦춰질 수밖에 없어 조합이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앞선 한남4구역 '출혈경쟁'의 학습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남4구역은 삼성물산 내부에서도 '본 적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할 만큼 소위 '박터지는' 싸움이었다. 삼성물산은 당시 조합원 65%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승리했지만 제안의 현실성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과열 경쟁으로 현대건설이 수백억원의 매몰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목격했다.
특히 압구정2구역은 현대건설이 수년 전부터 조합원 표심을 관리해 온 곳인 만큼 삼성으로서는 뒤집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더욱이 대안설계로 조합의 맘을 돌릴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승기를 거머쥘 변수를 만들지 못했다. 압구정 내 다른 구역을 노리는 것이 더 이득이라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압구정동은 현대건설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삼성 내부적으로 출혈에 대한 우려와 한남4구역 때의 경험 등을 토대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남4구역 때처럼 압구정에서도 현대가 선점하면 이후 이와 비교한 사업모델을 내세워 다른 구역에서 시공권을 따내는 것이 낫다고 봤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