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한 지 3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홈플러스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을 두고 증권사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데다, 임대료 협상 난항에 납품업체 이탈까지 겹치며 사태가 좀처럼 수습되지 않는 모양새다.
맞고소
홈플러스는 지난달 28일 신용훼손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금정호 신영증권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금 대표가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 당시 했던 발언들이 허위였다는 취지에서다.
신영증권은 지난 2022년 8월부터 올 2월까지 홈플러스의 ABSTB 발행을 주관해왔다. 지난 4월 ABSTB 판매사인 하나증권·현대차증권·유진투자증권 등 증권사 3곳과 함께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는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번에 홈플러스가 금정호 대표를 고소한 것은 신영증권이 홈플러스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데 대한 맞불의 성격이 강하다. 금 대표는 3월 정무위에서 "당연히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홈플러스가 사전에 신용등급 하락을 인지한 상태에서 기업회생 절차 신청 일주일 전까지 신영증권이 ABSTB를 발행하게 해 피해를 줬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2월 27일 한국기업평가로부터 신용등급 하락 평가를 받은 후 3월 4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신영증권이 마지막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ABSTB를 판매한 것은 지난 2월 26일었다. 홈플러스로부터 신용등급 하락 고지를 받은 건 그 다음 날인 27일 오후 6시경이었다. 기업회생 절차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 전에 이 사실을 미리 인지하거나 또는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고의로 이를 숨겼다는 게 신영증권의 주장이다.
신영증권 측은 "신용등급 'A3-'까지는 투자 등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신용등급 하락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며 "ABSTB가 '휴지 조각'이 된 것은 신용등급 하락 때문이 아니라 홈플러스의 갑작스러운 기업회생 절차 신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불완전판매" vs "사기"
홈플러스는 이 같은 신영증권의 주장이 모두 허위라는 입장이다. 사전에 신용등급 하락을 인지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ABSTB의 판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홈플러스는 신영증권이 홈플러스로부터 신용등급 하락을 고지 받은 27일 오후 6시 이후인 28일에도 ABSTB를 판매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신영증권이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ABSTB를 팔아넘겼다는 주장이다. 홈플러스는 신영증권이 홈플러스를 사기죄로 고소한 것도 이 불완전판매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는 "카드매출대금채권을 유동화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 ABSTB의 판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고 판매 규모, 내역 등을 사전에 공유 받은 바도 없다"며 "ABSTB 판매사인 증권사들의 불완전판매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의 조사 및 향후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명확히 조사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신영증권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2월 28일 이뤄진 4건 매도 거래의 경우 기관 대상이었다. 이들 기관들에게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을 알리고 거래 의사를 확인한 후 매도했다는 것이 신영증권의 설명이다.
특히 신영증권은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라는 주장에 대해 "홈플러스의 사기 혐의 유무죄 판단과 불완전판매는 서로 무관하다"며 "만약 신영증권에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다면 홈플러스가 유죄라 하더라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으므로 신영증권이 불완전판매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첩첩산중
납품업체의 계속되는 이탈도 문제다. 최근 빙그레가 지난달 24일부터 거래 조건 협의 중 이견이 발생했다며 홈플러스 납품을 중단했다. 매일유업 역시 재고 문제를 이유로 일부 제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매일유업의 경우 지난 주말부터 납품이 재개된 상태지만 빙그레와는 아직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홈플러스의 정산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를 개시한 후 LG전자, 농심, 롯데칠성음료, 서울우유, 농협경제지주 등과 납품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홈플러스는 임대점포를 두고 임대주 및 노조, 입점업체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홈플러스는 현재의 임대점포의 임대료 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일부 점포는 폐점할 가능성이 있다.
홈플러스는 임대료가 과도하게 높게 책정됐다며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임대료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의 임대 점포는 68개로 전체 점포(126개)의 절반이 넘는다. 홈플러스가 연간 부담하는 임대료도 약 4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에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개시 후 임대료 조정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41개 점포의 경우 지난달 말까지 임대료와 계약 조건 조정을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임대료를 약 35~50% 가량 낮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나머지 27곳의 경우 최종 답변 기한인 지난달 31일까지 협상을 완료하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15일 17개 점포에 대해 1차로 계약 해지를 통보한 데 이어 나머지 10개 점포에 대해서도 계약 해지를 통보할 예정이다.
이들 27개 점포의 협상이 결국 불발된다면 계약 해지 후 폐점까지 가능하다. 홈플러스는 만일 폐점에 이른다 하더라도 해당 점포 소속 모든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계획이지만 직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홈플러스 점포에 입점해 있는 입점업체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지난 2일에는 폐점 위기에 몰려있는 전국 홈플러스 점포 앞에서 홈플러스의 점포 구조조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 제출일이 다음달 10일로 한 달 연장된 만큼 홈플러스는 이 때까지 임대주와의 협상을 지속할 예정이다. 홈플러스는 "계약 해지 통보를 하지 않으면 기존 계약대로 계약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을 할 수가 없다"며 "임대료 협상을 지속하기 위해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일 뿐이므로 27개 점포 임대주들과는 향후로도 계속 협상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