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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표 밀맥주'는 왜 편의점에서 사라졌나

  • 2025.06.21(토) 14:00

[주간유통]대한제분·세븐브로이 분쟁
곰표밀맥주 권리 놓고 입장 갈려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PB맥주의 창세기

지난 2020년의 일입니다. 편의점 CU와 '곰표 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 수제맥주 제조사 세븐브로이가 힘을 합쳐 '곰표 밀맥주'를 만들었습니다. 밀맥주와 밀가루의 유사성에 착안해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곰표'로 레트로까지 한 스푼 더한 이 제품.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모든 CU 점포가 곰표 밀맥주 확보전에 나섰고 입고된 제품은 들어오자마자 매진됐습니다. 곰표 밀맥주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죠. 최근 몇 년간 이와 비견될 만한 이슈는 아마 포켓몬 빵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곰표 밀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초도 물량 10만개, 일주일 만에 30만개가 완판됐고 3년간 총 6000만캔이 팔렸습니다. 곰표 밀맥주를 단독으로 판매한 CU에선 카스를 누르고 전체 맥주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거,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곰표 밀맥주/사진제공=CU

곰표 밀맥주는 단순히 많이 팔리기만 한 맥주가 아닙니다. 이후 편의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온갖 브랜드와 손잡고 수제맥주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노 재팬 운동'으로 편의점에서 일본 맥주가 사라지며 그 자리를 수제맥주가 차지했죠. 곰표 밀맥주가 시장 하나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겁니다.

하지만 곰표 밀맥주의 질주는 정확히 3년 만에 멈추게 됩니다. 트렌드에서 뒤처져서도, 다른 스타 맥주가 등장해서도 아닙니다. 바로 '내분' 때문이었습니다. 

곰표VS대표

2023년 4월.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곰표 밀맥주를 만들기 위해 맺은 계약이 종료됩니다. 대한제분이 세븐브로이가 아닌 제주맥주와 함께 곰표 밀맥주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항간에서는 세븐브로이가 2021년 상장을 준비하면서 양 사의 갈등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세븐브로이가 사실상 '곰표 밀맥주'를 내세워 상장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거였죠. 

세븐브로이는 곧바로 '대표 밀맥주'를 출시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곰표 밀맥주와 거의 비슷한 패키지에, 캐릭터도 '흰 곰'을 사용했습니다. 대한제분은 곧바로 경고 서한을 보냅니다. 세븐브로이는 캐릭터를 호랑이로 바꾸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세븐브로이의 대표 밀맥주. 왼쪽 디자인으로 출시 준비를 했다가 대한제분의 항의에 오른쪽 디자인으로 교체됐다./사진제공=세븐브로이

두 달 후인 2023년 6월, 세븐브로이가 역공에 나섭니다. 대한제분이 곰표 밀맥주의 레시피를 빼돌렸다는 겁니다. 당시 세븐브로이 측은 제주맥주가 만든 곰표 밀맥주가 세븐브로이 제품과 동일하다며 '표절'을 의심했습니다. 당연히 대한제분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었고, 이후는 지리한 법적 분쟁의 시간입니다.

그 사이 세븐브로이는 성장세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2022년 327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85억원으로 곤두박질쳤고요. 4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3년 62억원, 2024년 91억원 적자로 뒤집어졌습니다. 결국 지난달 말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지난 12일부터 회생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승자는 없다

곰표 밀맥주를 놓고 다툰 양 사 중 승자는 누구일까요? '없다'가 정답일 겁니다. 말씀드렸듯 세븐브로이는 회사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곰표 밀맥주 대신 내놓은 대표 밀맥주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한제분도 승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갑질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떠안게 됐죠. 최근 대한제분은 입장문을 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대한제분이 피해자입니다, 곰표맥주의 진실 및 대한제분 입장'이었습니다. 이는 곧 대한제분이 가해자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대한제분이 세븐브로이 대신 손잡았던 제주맥주 역시 풍파를 겪고 있습니다. 새로이 곰표 밀맥주를 생산하게 됐지만 이미 수제맥주 트렌드는 끝물이었죠. 매출도 2022년 240억원에서 지난해 183억원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곰표 밀맥주의 성공 이후 수제맥주의 전성기가 찾아왔다./그래픽=비즈워치

이 과정에서 한 때 국내 맥주 시장을 주름잡았던 곰표 밀맥주의 인기도 사그라들었습니다. 이제 몇 년 전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찾을 뿐 다시 돌아온 일본 맥주와 카스, 테라에 자리를 내 준 지 오래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뭐가 원조인지도 모르겠고 비슷한 맥주들이 서로 원조다 표절이다 하고 싸우니 그냥 다른 맥주를 고르게 될 겁니다. 사실 곰표 밀맥주가 다른 맥주들이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맛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재미있는 브랜드 마케팅이 곰표 밀맥주의 최대 강점이었는데, 그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면서 더이상 손이 갈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곰표 밀맥주는 유통사와 제조사, 헤리티지를 보유한 브랜드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콜라보레이션 계의 걸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성공의 과실을 맛보게 되자 서로 등을 돌리고 맙니다.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지만 부귀는 함께 할 수 없다"던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 범려(范蠡)의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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