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년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6월 중순의 일입니다. 블라인드와 주변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큐텐에 인수된 뒤 한창 흑자전환을 위해 질주하던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판매자들이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바로 위메프와 티몬에 확인을 요청했는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결제 시스템을 바꾸는 중에 일어난 문제라며 곧 정산이 완료될 거라는 이야기였죠. 이때까지만 해도 위메프와 티몬 내부 관계자들조차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단 의미입니다.

한 달여가 지난 7월 말.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이 커집니다. 7월 22일 티몬이 무기한 정산 지연을 선언했고 이튿날에는 본사가 임시 휴업에 들어가며 판매자·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웠습니다. 일부 소비자들은 티몬 사옥에 찾아가 농성을 벌이기도 했죠. 결국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결제 대행사들이 철수하며 사실상 사업이 중단됩니다. '큐텐 사태'의 시작입니다. 이후의 길고긴 상황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봤습니다.
1년이 지난 2025년 6월 23일. 서울회생법원은 오아시스마켓의 티몬 인수를 승인했습니다. 이마저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지난 20일 열린 회생계획안 결의가 최종 부결된 겁니다. 다른 회생담보권자와 채권자들은 회생계획안을 받아들였지만 중소상공인·소비자로 구성된 회생채권자 조가 회생계획안에 반대해서입니다.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변제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흘 후 법원은 결국 강제 인가를 결정했습니다. 변제율이 높진 않지만 청산할 경우 이보다 더 변제율이 낮다는 점, 티몬 근로자들의 고용 보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큐텐 사태로 문을 닫은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중 티몬이 가장 먼저 부활의 깃발을 올린 셈입니다. 오아시스마켓은 죽다 살아난 티몬의 '오아시스'가 되어 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오아시스는 오는 7월 중순쯤 티몬을 재오픈한다는 계획입니다. 인수예정자로 결정된 4월 14일 이후 셀러 유치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업계 최저 수준의 수수료 정책, 구매 확정 후 익일 정산 시스템을 도입해 입점 셀러들을 안심시키겠다는 생각입니다.
오아시스의 시스템을 이용해 직매입 판매도 강화합니다. 티몬에 입점한 셀러가 직매입 판매를 선택할 경우 오아시스의 자체 물류센터에 입고시켜 빠른 배송을 해 줄 수 있게 됩니다. 오아시스마켓에서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대되는 점은 오아시스의 검증된 경영 능력입니다. 오아시스는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흑자를 냈습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귀하디귀한 '흑자 기업'입니다. 다른 이커머스들처럼 매출 규모를 줄여가며 만들어 낸 억지 흑자도 아닙니다. 지난해 오아시스마켓의 매출은 전년 대비 9% 늘어난 5171억원에 달했습니다.

'규모의 경제' 이론에만 집착하다 무너져버린 티몬과 위메프 등과 달리 오아시스는 과도하게 영역을 확대하기보다는 '잘 하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덕분에 신선식품·친환경 전문 이커머스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들이 인수한 티몬이 또 한 번의 '도박 경영'에 빠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오아시스가 처음 인수 후보로 나섰을 때 시장의 예측과는 다르게 티몬을 독립적으로 경영하겠다고 나선 점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당초 업계에선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업계 인지도가 부족한 오아시스가 티몬 브랜드를 활용해 확장 정책을 펼칠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티몬과 오아시스마켓을 별도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티몬의 귀환
예정대로 티몬이 7월에 돌아온다면 예전의 영광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관건은 역시나 '신뢰 회복'입니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시작된 큐텐 사태는 대한민국 이커머스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각인됐습니다. 티몬의 일반 회생채권 변제율은 0.8%에 미치지 못합니다. 티몬 셀러들이 받지 못한 돈의 99.2%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다시 티몬에서 판매를 재개한다 해도, 이전처럼 티몬을 주력 판매처로 삼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독보적이고 차별적인 서비스를 자랑하는 플랫폼이라면야 큰 이슈가 있어도 차선책이 없는 소비자들이 다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이커머스 업계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없으면 쿠팡과 11번가, 네이버쇼핑, G마켓을 이용하면 됩니다. 대체재가 너무나 많은 시장입니다.
실제로 티메프 사태 피해자의 모임인 '검은우산 비대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고회사는 회생의 기회로 면책되지만 모든 피해자는 변제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채권의 권리가 모두 사라진 피해자가 티몬과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강경 대응했습니다. 수수료를 덜 받을 테니 믿고 영업을 하라는 오아시스의 제안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희망이 담긴 전망도 있습니다. 결국 오픈마켓 시장은 '싸면 찾는' 시장입니다. 오아시스가 셀러들에게 업계 최저 수수료를 약속했다는 건 똑같은 셀러의 상품이 티몬에서 가장 쌀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물건이 저렴하면 소비자는 결국 돌아올 거라는 '낙관론'입니다. 오아시스는 기존 티몬이나 위메프처럼 적자 기업도 아닙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13년 연속 흑자를 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오아시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약 1400억원에 달합니다. 당분간은 '미정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단 셀러들이 안착하고 소비자가 돌아오면 기업은 다시 굴러갑니다.
물론 굴러만 가면 되는 건 아닙니다.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은 이제 쿠팡과 네이버쇼핑의 2강과 나머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티몬이 이 '나머지'에 낀다 해도 그때부터 또 생존 경쟁이 이어집니다. 알리바바와 테무 등 C커머스의 공습에 쿠팡마저도 떨고 있는 상황입니다. 간신히 생명을 부지한 티몬에겐 또 하나의 난관입니다. 티몬과 오아시스가 만들어 나가야 할 미래는 거기서부터가 시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