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신약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국내 바이오텍(신약개발사)이 늘고 있다.
지놈앤컴퍼니는 현재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 '유이크'의 일본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의 한 대형백화점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에는 1만여명이 방문했다. 또 팝업을 함께 진행한 17개 국내 브랜드 중에서 매출액 1위를 달성했다.
지놈앤컴퍼니는 화장품을 비롯한 프리미엄 건강기능식품 사업부에서 번 자금을 혁신신약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지난 6월 이렇게 개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을 스위스계 제약사 디바이오팜에 약 5800억원에 기술이전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쎌바이오텍은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듀오락'을 전 세계 40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대장암 신약개발 과제에 투입하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을 허가 받아 연내 임상 1상 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바이오텍이 신약개발 자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유상증자, 전환사채(CB) 발행 등 외부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발생가능한 주주가치 훼손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펩트론은 지난달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발행계획을 밝혔고 다음 거래일 주가가 전일대비 12.4% 하락했다. 주가가 내린 데는 발행주식의 12.7%에 달하는 신주가 시장에 풀리면서 주식가치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외부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고 주가가 모두 내림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명확한 비전으로 투자자들을 설득해 주가가 되레 상승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7월 이중항체 기반의 ADC 연구개발 자금으로 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혔다. 이날 이상훈 대표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회사의 새 비전을 설명했고 주가는 이틀 연속 10%대 상승세를 보였다.
시장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신약개발 자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자체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또 다른 이유다.
코로나19 이후 금리가 오르면서 최근까지 바이오텍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나서 K-바이오·백신펀드를 조성했으나 지난해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치르며 전체 목표액의 35%(1750억원)만 모집하는 데 그쳤다.
많은 바이오텍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자체 개발한 신약 매출액으로 신약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허가를 받은 SK바이오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약물은 경쟁약물과 비교해 치료 후 발작이 완전히 소실되는 비율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현재 빠른 속도로 미국시장을 침투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매출 확대에 힘입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세노바메이트의 지난 상반기 매출액은 239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6.7% 증가했다.
SK바이오팜은 현재 세노바메이트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표적단백질분해제(TPD)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방사성의약품(RPT) 3개 분야 신약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계 제약사로부터 방사성의약품 후보물질을 약 8000억원에 도입하기도 했다.
조헌제 신약개발연구조합 연구개발진흥본부장(전무)은 "바이오텍이 건기식 등의 분야에서 확보한 수익을 혁신에 투자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기업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절차"라며 "한국기업이 전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재원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