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추진이 공식화 이후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일부 주주사의 의견이 막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양사 합병은 규모의 경제 실현과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통해 미국 넷플릭스·유튜브에 대항할 대형 OTT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있으나, 방송·콘텐츠 생태계를 교란하는 '공룡'이 나와 소비자 선택권을 줄일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게다가 2019년과 2022년에 있었던 OTT 합병에 대한 공정위 판단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평가할지도 관심이 모인다.
기대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OTT 월 사용자(MAU) 787만명의 티빙과 427만명의 웨이브가 합병하면 전체 MAU가 1214만명에 달하고 점유율 35.7%를 차지해, 1167만명의 넷플릭스 점유율 34.4%를 뛰어넘게 될 것이란 단순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같이 단순한 MAU·시장 점유율 합계는 양사 OTT의 중복 사용자를 계산하거나 합병 이후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면 어떤 방향으로든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추진은 각사 OTT를 합쳐 사용자 규모를 단숨에 증가시키겠단 목표만으로 국내 OTT 1위를 하겠다는 단순한 계산 때문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웨이브·티빙은 과거에 각자 합병을 통해 성장해왔으나, 현재는 글로벌 1위 넷플릭스에 밀리고 쿠팡이 자사 쇼핑몰 이용자를 위해 만든 '쿠팡플레이'에 쫓기는 신세다. 2019년 SK텔레콤의 '옥수수'와 지상파3사(KBS·MBC·SBS)의 '푹'이 합병하면서 탄생한 웨이브는 국내 최대 OTT로 단숨에 급부상했고, CJ ENM의 티빙은 2022년 KT의 '시즌'과 합병한 바 있다.
넷플릭스가 현재 OTT 시장을 장악하고, 쿠팡플레이가 갑자기 득세한 배경은 인기 콘텐츠를 제공했기 때문이지 어떤 OTT와 합병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 시도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 최대 목표라고 판단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상파3사와 CJ ENM이라는 강력한 콘텐츠 사업자들이 힘을 모으면 콘텐츠 직접 투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콘텐츠를 사고파는 시장에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콘텐츠 생태계에서 경쟁력이 더욱 강해지면 구독료 인상 카드도 능동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 넷플릭스도 사용자를 끌어모은 뒤 구독료 인상과 계정 공유를 막는 수법을 구사했다. 이를 통해 적자 탈출도 시도할 수 있다. 웨이브와 티빙 모두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던 만큼, 합병 이후 이와 관련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도 도모할 수 있다.
국내 OTT 합병에 대한 최근 정부의 시각도 관심사다.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티빙과 시즌의 기업결합에 대해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효과는 없으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급할 수 있고 콘텐츠 제작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합병 OTT 출범으로 이어지므로, 궁극적으로는 OTT 구독자들의 후생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정위는 또한 "티빙과 시즌의 OTT 시장 점유율이 18% 수준에 불과해 1위 넷플릭스 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합병 OTT가 단독으로 구독료를 인상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며 "CJ 계열사들이 배타적 공급을 강행한다 하더라도 경쟁 OTT 입장에서는 수많은 대체 공급선이 존재하고, 콘텐츠 다양성은 OTT 지속 이용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CJ계열 콘텐츠만 배타적으로 구매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우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에 대한 기대는 반대 진영에서 보면 우려가 된다. 경쟁 사업자에 대한 방송 콘텐츠의 차별적 제공이나 공급 가격을 인상하는 전략을 구사할 경우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SK텔레콤 '옥수수'와 지상파3사(KBS·MBC·SBS)의 '푹'이 합병할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의 결합 후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경쟁 유료 구독형 OTT의 콘텐츠 구매선이 봉쇄돼 시장의 경쟁이 실질적으로 제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면서 "방송 콘텐츠 공급 시장에서 특정 유료 구독형 OTT를 배제하는데 아무런 법·제도적 제약이 없으므로 방송 콘텐츠의 공급을 중단하거나 공급 대가를 인상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쟁 사업자를 봉쇄할 능력이 있다"며 "지상파 방송3사는 경쟁 사업자에게 공급을 중단하거나 가격을 인상하는 등의 봉쇄 전략을 실행할 유인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022년의 공정위의 OTT 합병에 대한 판단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번 티빙-웨이브 합병은 덩치가 더욱 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2019년에 웨이브가 탄생한 당시와 유사한 우려가 2024년 다시 제기된다. 티빙 최대주주 CJ 계열과 웨이브 주요 주주사들인 지상파(KBS·MBC·SBS) 중심으로 콘텐츠 생태계 구조가 재편돼 자사 콘텐츠를 우선 노출하는 등 차별적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IPTV 사업자나 중소 PP(Program Provider), 홈쇼핑 사업자들은 콘텐츠 수급에 문제를 겪거나 자사 콘텐츠를 제공할 플랫폼을 잃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합병 법인이 일정한 시장 지위를 차지한 뒤에는 콘텐츠 투자를 축소하고 구독료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티빙-웨이브가 합병하면 이들이 넷플릭스와 함께 국내 OTT 시장을 양분하게 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소규모 OTT 플랫폼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신규 플랫폼의 진입이 더욱 어려워지면, 시장의 역동성을 훼손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넷플릭스도 지난해 콘텐츠 투자 규모를 2021년 수준인 170억달러로 유지하고 있고,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의 경우 2020년 초 33.1%에서 지난해 3분기 25.3%로 줄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는 한동안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했던 '계정 공유'를 갑자기 제한하고 광고 요금제, 구독료 인상 등 다양한 수익성 개선 방안을 계속 꺼낸 바 있다.
이상호 경성대 교수(예술종합대학장)는 "독과점 사업자가 탄생하면 콘텐츠의 독점적 배포 가능성으로 인해 기존 방송 플랫폼과 소규모 사업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특히 OTT 사업자의 독과점은 관련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시청자 보호에 더욱 무관심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