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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임말 인플레 개그

  • 2013.12.06(금) 16:10

“생크림 올라가신 커피 먹어봤니? 바로 이 커피님이셔. 호호”
프랑스 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 있던 친구가 두 해 만에 고국에 돌아와 발견한 최고의 개그는 카페 알바생의 잘못된 높임말이었다. 그 친구에 의하면 이 카페에는 어르신 커피와 케잌 천지다.
“당근 케익은 지금 안계시구요. 다른 케익은 계세요”
“모카커피에는 생크림이 올라가시는데 괜찮으세요?”
“전부 19000원 이세요. 예, 카드로 계산 하시겠습니다.”
웃음을 멈추지 못하며 친구가 묻는다.
“혹시 요즘 한국에 높임말 개그가 유행이니?”

“환자분, 이제 나오실게요. 잠시 후 처방전이 나오실거예요.”
나보고 나오라는 건가? 자기가 나오겠다는 건가? 처방전까지 나오셔야한다니… 갈수록 태산이다.
카페에서는 어린 알바생의 귀여운 말실수로 웃고 넘겼지만 이건 곤란한데? 서른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간호사까지. 살짝 당황스럽다.
“처방전 나왔다구요?” 은근히 말실수를 알려주려 다시 물었더니
“잠시만요, 아직 안 나오셨어요.” 라고 또박똑박 대답한다.
정작 환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라는 정중한 표현 대신 ‘잠시만요’ 하는 허리 잘린 양해를 구하면서도 여전히 처방전에는 ‘시’를 붙인다.

돌이켜보니 우리의 일상이 야릇한 높임말에 점령당한지 꽤 되었다.
“커피 나오셨어요.”
“아직 그 물건 안들어오셨어요.”
“그 메뉴는 안되세요.”
언제부터 주변 사물이 그렇게 높은 존재가 되었는지, 말마다 ‘시’를 갖다붙인다. 너무 자주 듣다보니 새로 생긴 서비스 화법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개그 프로그램 탓으로 돌리기엔 높임말 인플레 조성자들의 얼굴이 너무 진지하다.
혹시? 손님과 관련된 사물의 존대가 곧 고객에 대한 극진한 정성을 표현하는 것이라 여기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말의 바른 사용 외에 또 다른 문제가 보인다. 바로 형식에 대한 과신. 존대라는 형식과 그것의 과잉 사용이 진정성보다 우선되었기 때문에 확산 된 높임말의 인플레 현상.

“여기, 왜 그래? 아퍼? 아펐어? 예날에?”
친구가 단골인 발마사지 샵의 치료사 진선생은 한국에 온 지 6년째인 중국인이다. 어지간한 한국말은 다 하는데 높임말은 아직 못한다.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냥 반말을 한다.
“올리는 말, 어려워, 못해, 손님도 반말해요.”
반말로 다하고 적당히 말끝에 ‘요’를 붙이는 게 진선생의 높임말이다. 약간 새는 발음으로 어디가 불편한지, 마사지 강도는 적당한지 재차 묻는다. 처음엔 황당하지만 마주 반말을 하다보면 그의 정성과 배려가 느껴진다.
“여기 닥닥해, 머리 아퍼, 자주 풀어줘야 안아프지요.” 높임말을 못써도, 대충 써도 고객은 그의 마음을 안다. 그의 어눌한 말씨에는 형식을 넘어서는 진심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옷이 참 이쁘세요.”
“이런 어머니 둬서 참 좋으시겠다.” 며 함께 옷 사러 간 아들에게 칭찬성 발언을 하는 판매사원에게 옷이 이쁜 건지, 내가 이쁜건지 물어봐야 할지, 어머니를 둔 아들이 아니라 아들을 둔 어머니라고 알려줘야 할 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럴 땐 진선생의 시원한 손맛이 생각난다. 그 진심이 담긴 어눌한 반말까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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